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유미 Nov 25. 202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처럼 써보기




어린 마르셀이 자기 마음을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꽁꽁 묶어두고 슬픔의 실타래를 끌며 마지못해 하나씩 밟고 오르는 계단, 그 가증스러운 계단에서 나는 바니시 냄새가 ‘아주 빨리, 거의 순식간에, 갑작스럽고도 엉큼하게 내 몸속으로 들어와’ 나를 책에서 넘어뜨리고 끝 모를 구멍으로 떨어뜨려 중력에 눌려 납작해진 모양새로 방바닥에 뺨을 대고 엎드리게 만들었다.

마르셀의 슬픔의 바니시 냄새는 사라지고 대신 뺨을 타고 더운 바니시 냄새, 종이 장판 위에 칠해진 매끄럽고 투명한 바니시 냄새가 내 몸을 점령해 어느새 눈으로 방바닥의 종이 장판이 겹쳐진 곳마다 만들어진 교차점의 가로선과 세로선을 따라 쫓을 때, 가족들은 바로 옆에서 상을 펴고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소화력이 좋지 않아 먹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나는 식사시간이면 식사하기 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엄마가 특별히 신경 쓴 날에는 더욱 심했다.

늘어난 반찬 그릇 사이로 엄마의 기대가 흐르고 맛있는 반찬들을 내 앞쪽으로 끌어 놓는 엄마의 손길이 바빠지면 밥상을 감싸고 있는 공기만으로도 금방 배가 불러와 밥상을 보기만 해도 목이 막히는 기분이 들어 몇 숟가락 놀리지 못하고 금방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먹은 밥 양을 항상 확인하는 엄마를 눈속임하기 위해 새가 몇 모금 쪼아보고 제 먹을 것이 아닌 것을 알고 내버리고 가버린 듯 남은 밥을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밥공기에 빈 공간을 만든 뒤에 배가 아프다고, 엄마에게는 언젠가 올 것이 분명하지만 올 날이 멀길 바라며 손꼽아보길 외면했던 개학날이 들이닥친 것처럼 들렸을 그 말을 뱉고 나면, 엄마의 한숨소리와 함께 마침내 고문의 시간에서 빠져도 된다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허락은 제한된 것이어서 내 자리는 밥상 앞에서 방바닥으로 옮겨가는 정도였다.


어릴 때 살았던 옛집의 안방 바닥은 종이 장판 위에 바니시가 발려있어서 겨울철 난방을 하면 바닥에 깔린 보일러 선이 벌겋게 데워져 용광로의 펄펄 끓는 말간 철물이 시멘트를 뚫고 배어 나와 구불 길을 만들어 거기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으면 오체투지를 하는 중생에게 화답하는 부처의 손길이 뺨과 배를 타고 온 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뺨을 번갈아 대며 방바닥에 엎드려 있으면 양쪽으로 전혀 다른 광경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장롱 다리 밑이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어찌나 컴컴한지 바니시의 반짝임도 그 속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끈, 연필, 종이 조각, 먼지뭉치, 동전, 손톱만 한 놀잇감 등등 많은 것을 집어삼키고 있어서 각각의 물건들이 주인 손을 떠나 새로 자리 잡은 곳에 잘 있는지 매일 비밀스레 하나씩 눈으로 꼽아보곤 했는데, 한 번 빠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그 시커먼 사자의 입으로 내가 손을 집어넣는 건 새로 등장한 동전을 꺼낼 때뿐이었다.


반대쪽으로는 밥상다리 아래로 식구들의 둔부와 발가락이 보였다.

어떤 신체부위는 이름만으로도 냄새를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밥상 아래에서 날 것만 같은 고리고 쿰쿰한 냄새 위로 밥상 위 음식들에서 나는 짭조름하고 달금하고, 고소한 냄새가 날아와 눈과 코가 이질적인 냄새로 층을 쌓아, 전쟁으로 1층부만 남은 탑 위에 한참 뒤 새로 올린 위층부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하나의 탑으로 어우러지듯이 어울렸지만 사실 가장 강렬하게 나를 자극하는 냄새는 뺨에서 묻어나는 새로 바른 지 얼마 안 돼 신선한 바니시 냄새였다.


그 산뜻하고 세련되고 정제된 화학물질 냄새는 온통 유기물 냄새로 뒤범벅된 그 집에서 혼자 어울리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더욱 돋보여서 쌀쌀맞은 애인에게 오히려 끌리듯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보일러의 열기로 녹진하게 녹은 겨울철 바니시는 1000도가 넘는 열기를 품고 공예가의 날숨으로 부풀어 올랐다가 모양 잡히는 유리병처럼 내 손길 따라 방바닥에서 여러 가지 그림이 되었는데 당시 가장 열성적으로 그렸던 건 학교 앞 뽑기 가게에서 당첨되면 상품으로 주는 금붕어 모양 설탕과자였다. 한 번도 당첨되지 못했던 나는 손끝으로 세심하게 비늘까지 그려가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는데 그럴 때면 방바닥 전부가 설탕과자가 되어 달콤한 바니시 냄새를 풍겼다.

여름날에는 바깥에서 놀다가 햇빛에 한껏 달은 몸을 바니시 위에 뉘었는데 땀이 송골송골한 뺨을 맑은 얼음 바닥에 대고 있으면 방 안은 검푸른 심해가 되어 시원하게 몸을 식혀주며 소금기를 먹어 단단한 바니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바니시 냄새는 어릴 적 옛집을, 내 기억 속에서 허물어져 주소만을 내걸고 그저 공간으로 존재하던 장소를 부분적으로 보수를 해내며, 금붕어와 자라가 함께 살던 수족관과, 금붕어 꼬리를 뜯어먹는 자라를 떼 내려고 유리벽을 두드려 공격하면서도 금붕어를 위해 자라를 분리시키지는 않았던 기묘한 방식 하며,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동생이 아기였을 때 엄마가 손으로 새하얗게 빨아서 켜켜이 쌓아 놓은 천기저귀 위로 연필깎이 통을 쏟아 흑연가루로 뒤덮은 일 하며, 겨울 아침에 주방 창문 너머로 환한 빛이 밀려들어오면 밤새 눈이 쌓인 건 아닐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던 설렘까지 찾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무지개 같은 유년기 시절이 끝나고 학업을 위해 그 집을 떠났던 사춘기 시절까지 되살려냈다.




*프루스트처럼 써보기를 했는데 간결하게 쓰기를 좋아하는 제게는 무척 생소하고 어려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쿄타워'에 숨긴 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