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열기가 심장을 달구는 건지 심장이 빨리 뛰어서 머리에 불이 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고 있는 건 아마도 오후 늦게 마신 커피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오후에 커피를 마실 때면 시간을 먼저 확인한다. 오후 3시경이면 커피막차를 놓칠 새라 마음이 바쁘고 4시가 지나버리면 어쩔 수 없이 다음날을 기약해야 한다. 고작 커피 한 잔 내 맘대로 마실 자유의지도 내겐 없냐며 무모한 용기라도 부린 날엔 밤새 달게 벌을 받아야 한다.
카페인이 온몸 구석구석을 공격해 중추신경을 자극시키고 견고한 무의식의 성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용기의 심장까지 뛰게 만든다. 내 삶에 전설로 내려오는 이 신기루는 도파민이 소멸된 나의 일상 속에서 좀체 만날 수 없는데 검은 묘약이 마법을 부리는 시간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다. 살아있음.
그때부터 나는 무적이다. 당장 내일은 강변을 달리며 신선한 아침 공기로 폐를 부풀릴 것이고, 나는 지치지 않고 언제까지고 달릴 수 있다. 집에 돌아와 한바탕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아 먼지가 앉은 뜨악한 저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거침없이 자판을 두드릴 것이다. 또 골치를 앓으며 겨울동안 했던 주식공부를 이제 실전으로 옮겨 투자를 하면 나의 차트는 꺾인 선 없이 탄탄대로를 달리며 수익을 낼 것이다.
용기의 심장은 더욱 세차게 뛰어 심지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미용실 방문마저도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내일은 겨우내 웃자란 나의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가고 열기에 녹아 배배 꼬이는 모습을 보고 말테다.
카페인 한 방울이 만들어 낸 이런 상상들을, 용기의 심장이 만들어낸 몽상들을 온수매트 위에 노곤히 모로 누워 지칠 때까지 한다.
가수는 떠나버린 그녀가 caffein 같아서 밤새 잠 못 이루는 괴로움을 노래한다.
You’re bad to me, so bad to me, oh girl you’re like caffeine.
내게도 아득한 옛이야기 같이 누군가가 카페인이 되어 주던 시절이 있었겠지.
지금 나의 카페인은 무엇일까?
집 밖을 나가지 않아 계란이 떨어진 지 며칠 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일은 뭐라도 해 보자. 일단 마트부터 고고.
*노랫말 : HIGHLIGHT 양요섭 – Caffe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