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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Jun 03. 2023

접두사 '개'



주말 기타 레슨을 마친 아이를 데리고 셋이서 점심을 먹으러 중국집으로 향했다.


“엄마 이 노래 알아?”


항상 한 걸음 앞서 걷는 남편 뒤를 둘이서 따라 걷다가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오늘 연습한 곡이야? 다시 똑바로 불러봐.”


멜로디가 있는 곡인지 랩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마구 불러 젖혀서 재요청을 했으나 두 번째 시도에도 별 소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잘 모르겠는데. 유명한 노래야?”

“이걸 몰라? 볼 빨간 사춘기 노래잖아, 러브 스토리. 요즘 엄청 역주행 중인데.”

“네가 너무 개떡같이 불러서 그렇잖아.”

“그렇지. 내가 완전 개 똑같이 불렀지.”

“개떡 같다고.”

“개 똑같다고.”


영어에 관사가 있다면 요즘 애들어에는 ‘개’가 있다. 영어에서 관사는 뒤에 오는 명사의 성격에 따라 정관사, 부정관사로 나뉘고 특별한 경우는 따로 암기를 해야 하는 등 사용법이 복잡한데 요즘 애들은 모든 단어 앞에 ‘개’를 놓음으로써 쓸데없이 문장의 상황을 따지고 외우는 영문법에 한 방 먹였다. 영문학자들이 일찍이 한국 요즘 애들어를 알았다면 관사 따위는 ''나 줘버리라고 했을지 모를 일이다.


요즘 애들 문해력이 걱정된다지만 이렇게 언어 활용 능력이 탁월한데 그저 나이 든 사람의 노파심에 지나지 않다.

한편으로 동서양의 문화를 통섭할 정도로 놀라운 요즘 애들이지만 이들과 기성세대 간의 서로에 대한 이해의 간극은 끝 간 데 없이 벌어져 소통은 요원해 보인다. 오늘 아이와 나 사이에 대화 불통 사건은 그런 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6월 3일 오늘의 유머

모든 단어에 접두사 ‘개’를 붙여서 사용하는 요즘 애들의 대표 주자와, 남자 둘과 17년을 사는 동안 점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잃어가며 나날이 언사가 거칠어지는 중년 여자는 좀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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