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유미 Jan 05. 2024

미신



스스로를 융통성과 실행력이 떨어지는, 지독하게 이론적인 인간형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몸이 아프거나 밤에 잠이 안 올 때조차도 상황을 해결하기보다 왜 그럴까를 먼저 따져서 이유를 밝혀내야 안심이 된다. 이런 성향상 비합리적인 믿음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자연히 신도 미신도 공평하게 문화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오래된 친구가 기독교 모태신앙인인데 평생 한 번도 나에게 전도를 하지 않은 게 문득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때 친구가 내 눈높이에 맞춰 해준 설명이 찰떡같이 기막혔다.


“H.O.T. 팬을 젝스키스팬으로 영입해 볼 수는 있지. 반대도 가능하고. 그런데 아예 대중가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팬덤으로 끌어들이는 건 어려워.”


사람마다 더 끌리는 영역이 있기 마련이고 내 경우에 종교보다 철학이, 미신적 행위에 안심하기보다 그 속에 숨은 인간의 오랜 역사를 읽어내는 데 더 관심이 간다. 이러다 보니 여간해서 일상에서 만날 일이 잘 없는 두 신이지만 내가 뿌리내리고 있는 문화의 토양 같은 미신의 그림자는 무의식 중에 어른거릴 때가 있다.


지난 주말 남편 겨울 옷가지를 몇몇 사러 둘이 차를 타고 나섰다. 가는 길에 점심을 먼저 해결하려고 식당 방향으로 우회전을 하려는 중이었다. 신호대기 줄을 서기 위해 속도를 줄이는데 옆 차선 차가 깜빡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앞으로 끼어들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옆 차가 범퍼 카처럼 막무가내로 우리 차를 들이받으려는 상황이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베테랑 운전자인 남편이 사고를 직감하고 경적을 세게 울려 내 비명 소리는 거기에 파묻혔다. 정말 깻잎 한 장 차이로 충돌을 피하고도 그 차는 미안하다는 손짓 한 번 없이 놀란 우리를 앞질러 쌩하니 가버렸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겨우 식당에 도착했는데 이번엔 차 댈 데가 마땅찮았다. 가게 앞 경사가 심한 곳에 딱 한 자리가 있어서 남편이 주차를 시도했다. 가벼운 엑셀소리와 함께 차를 올리는 순간, 그그극 하는 마찰음이 들렸다. 차에서 내려 보니 입구에 턱이 있는 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남편이 차 밑으로 허리를 숙여 오일 따위가 샜을까 봐 한참 살펴보았다.


오는 길에 겪은 우여곡절과는 별개로 맛깔난 나물이 잔뜩 들어간 비빔밥은 맛있었다. 배부르게 먹고 숟가락을 놓으며 누가 먼저랄 거 없이 둘이 눈이 마주쳤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봐.”

“돌아다니지 말고 조신하게 집에 가자.”


3년 전 지금 집으로 이삿날, 액땜한다며 쑥을 태우고 소금을 뿌리고 팥죽을 끓이는 두 어머니를 참으로 유별나다 생각했던 둘이었건만, 자동차로 연이어 위험한 상황에 놓이자 간이 콩알만 해져서는 불길한 징조를 하늘의 계시라 여기게 됐다. 결국 미신 따위는 안 믿는다고 자신하던 두 사람은 행여 솥뚜껑 보고 놀라게 될까 봐 무서워, 자라목을 움츠리고 서둘러 집으로 숨어들었다.


“우리 좀 웃기다 그치?”

“찜찜한 건 어디까지나 찜찜한 거니까.”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도 그렇고, 당신이 나보다 더해.”

“내가? 언제?”

“왜, 당신 회사 옮길 때 나보고 점보고 오란 적 있었잖아.”

“아, 그때.”


오래전 일이 생각나 둘이서 키득거렸다.

6,7년 전쯤 직장을 옮기는 일로 남편이 고민을 할 때였다. 우연히 내 사정을 알게 된 지인이 반색하며 아주 용하다는 점집을 알려주었다. 낮에 웃어넘겼던 이야기를 퇴근한 남편에게 해주었더니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상기된 표정으로 한 번 다녀오라고 부탁을 하는 거였다. 오죽 답답하면 저럴까 싶어서 난생처음 점집이란 곳을 혼자 가보게 되었다. 주뼛대며 찾아간 곳에서 막상 복채 오만 원을 내고 점술가에게 들은 건 전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말들이라 아리송해지기만 더했을 뿐이었다.


“뭐래?”

“뭐, 이직을 하란건지 말란 건지......”

“딱 부러지게 안 알려줘?”

“조상한테 자꾸 빌어야 된다하길래, ‘어머니께서 밤낮으로 불당에서 빌고 계신다.’고 했더니 잘못된 곳에다 빌고 있다나 뭐라나......”

“기도하는 곳을 옮겨야 되나?”

“돈 내는 데를 바꾸란 소리겠지. 자기한테로. 여하튼 집안에 일찍 죽은 아이귀신이 있는데 당신을 예뻐해서 보살피고 있대.”


그 말에 남편 얼굴이 바짝 굳는 것이 느껴졌다.


“내 앞에...... 어려서 죽은 누나가 있었어......”


일순간 남편을 흔들어 놓은 요언은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물 흘러가는 소리 같았다.


“여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려서 죽은 아이 한두 명 없는 집이 어디 있어.”


나의 일침에 퍼뜩 남편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시줏돈은 복채로 놓이지 않고 불전함 속으로 꾸준히 들어가고 있음은 물론이다.


솥뚜껑 보고 놀란 자라가 됐던 사건이 있은 며칠 뒤, 이번엔 동생이 이직을 놓고 고민 중이라는 카톡이 왔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해 마음이 오락가락하다는 동생에게 아무렇지 않게 답을 했다.

‘점이라도 한번 봐봐.’

동생이 바로 답을 달았다.

‘언니가 그 말하니까 너무 이상하다.’


어디까지나 미신을 믿지 않는데도 우연히 벌써 신년운수를 보게 됐다. 물속에서 발을 죽을 둥 살 둥 저어대는 백조 모양새라고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힘든 한 해가 될 것 같은 운수가 안타까웠던지 사주풀이를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한마디 보태셨다.


“외국어 공부를 해보세요. 이런 경우에 그런 것도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자리만 차지하다 버킷리스트 밖으로 내던져졌던 스페인어 배우기에 도전이라도 해봐야 하나 어쩌나.




매거진의 이전글 우수 사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