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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Jun 11. 2020

일리아스(제13권)

함선들을 둘러싸고 싸우다


 
**두 아이아스(동명이인) : 큰 아이아스는 텔라몬의 아들로 활을 잘 쏘는 테우크로스와 형제이다. 작은 아이아스는 오일레우스의 아들이다. 두 아이아스 모두 그리스 군을 이끄는 훌륭한 지휘자이다.
**이도메네우스 : 크레테 왕. 노장임에도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해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무사히 귀향한다.
**아이네이아스 : 앙키세스와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다르다니에인들의 지휘자. 트로이아 왕가의 방계.
 
“제우스가 잠시 눈을 돌린 사이 포세이돈이 아카이오이족 진영으로 갔다.
그는 두 아이아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사지를 가볍게 해 주었다. 대지를 떠받치는 신(포세이돈)은 차례로 아카이오이족을 격려했다.
아카이오이족 장수들은 열화와 같은 투지로 밀집 대열을 이루고 헥토르를 밀어냈다. 주위에서는 싸움이 계속되니 그칠 줄 모르는 함성이 일었다.
메리오네스는 싸움 중에 창이 부러지자 크레테인들의 지휘자 이도메네우스의 막사에 창을 빌리러 왔다. 그의 막사에는 죽은 트로이아인들에게서 수집한 전리품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도메네우스와 메리오네스가 번쩍이는 청동으로 무장하고 전의에 넘쳐 다시 싸움터로 나아갔다. 이도메네우스에게 맞서 싸우던 데이포보스가 아이네이아스를 불러오자 뱃고물들 옆에서 양군의 근접전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크로노스의 강력한 두 아들(제우스와 포세이돈)은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영웅들을 위해 참혹한 고통을 마련하고 있었다. 제우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영광을 내리고자 트로이아의 승리를, 포세이돈은 제우스에게 몹시 분개하여 아카이오이족의 승리를 원했다.
한편 다른 접전지에 붙잡혀 싸우고 있던 헥토르는 그의 백성들이 함선들 왼쪽에서 아르고스인들에게 도륙되고 있다는 사실을 듣지도 알지도 못했다.
두 아이아스가 헥토르 군대에 맞서 한 명의 아이아스는 앞에서 또 한 명의 아이아스는 뒤에 숨어 활을 쏘아대니, 트로이아인들은 뒤죽박죽 되어 전의를 잃고 말았다.
이에 폴뤼다마스가 헥토르에게 장수들을 불러 모아 계속 싸울 것인지 물러갈 것인지 논의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정작 헥토르가 그들의 용맹한 장수들을 찾아 나섰을 때는 이미 그들은 벌써 다치거나 죽고 난 뒤였다.
분노에 찬 헥토르는 이 전쟁의 시발점이 된 파리스에게 모욕적인 말을 퍼붓고 아이아스와 전장에서 맞선다. “
 
<독후감>
양 진영의 장수들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가 떠올랐다. 복수에 눈이 먼 남자가 도끼 한 자루로 수십 명의 폭력배들을 아작 내던 그 장면. 줄 지어 덤벼드는 적을 내리찍던 주인공 얼굴에 어느 장수의 얼굴이 겹쳐지기도 하고 도끼에 머리가 빠개져 피를 철철 흘리는 폭력배의 얼굴에 또 다른 장수의 얼굴이 겹치기도 했다. 생각할수록 처참한 장면들이었다.
 
포세이돈이 두 아이아스를 찾아가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장면이 나온다.
‘대지를 떠받치고 대지를 흔드는 신은 두 사람을 지팡이로 쳐서 굳센 용기로 채워주고 그들의 사지를, 아래로는 두 발과 위로 두 손을 가뿐하게 해 주었다.’
어제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떠올라 '그때 포세이돈이 지팡이로 나도 좀 툭툭 쳐주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제 일을 곱씹었다.
코로나 19가 집집마다 확 찐자를 발생시켰다는데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내켜하지 않는 우리 집 확 찐자를 억지로 끌고 줄넘기라도 좀 시키려고 저녁께 놀이터에 나갔다. 벤치에 앉아 아이가 줄넘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어디선가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떼 등장해 순식간에  놀이터를 점령했다. 놀이기구들을 부술 작정인지 뱅뱅이에 발길질을 해대서 곱지 않은 눈길로 무리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중 두 명이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침을 찍찍 뱉으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미끄럼틀 아래에서는 다섯 살 정도 된 아이도 놀고 있었는데 말이다. 벤치에 앉아서 지켜보던 내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러니 내가 점점 꼰대가 돼가는 것이 분명하다.)
“이봐, 학생들. 여기 놀이터 금연구역이야. 그리고 밑에 아기도 놀고 있는데 지금 무슨 짓이야!”
그 불량기 가득한 청소년들이 그래도 착해서 고분고분하게 담배를 끄고 내려왔길래 망정이지 나중에 생각해보니 요즘 세상에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내가 그랬나 싶었다.
수로도 밀리고 힘으로는 더 밀리는 대치상황에서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에게 포세이돈의 지팡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날 리 없다. 나는 조용히 휴대전화를 꺼내 아파트 경비실 아저씨를 호출하는 것으로 뒷 상황을 얼버무렸.
아, 그때 포세이돈에게 지팡이 좀 빌리자 할 걸.
 
책을 계속 읽어 나가니 비겁한 자와 용감한 자를 구분하는 방법이 나온다.
‘비겁한 자는 수시로 안색이 변하고, 그의 기개도 마음속에 태연자약하게 앉아 있지 못하오. 그래서 그는 자꾸만 옮겨 앉고 앉은 채 발을 바꾸며, 또 죽음의 운명을 생각할 때마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심장이 마구 뛰고 이빨이 덜덜 떨리니까 말이오.’
어제 벤치에서 앉은 자세를 자꾸 바꾸었던 건 벤치가 불편해서였고, 또 가슴속에서 심장이 마구 뛴 것은 줄넘기를 한 탓이고, 이빨이 덜덜 떨렸던 것은 저녁 바람이 서늘했기 때문이지 결코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고 우겨보지만...... 그, 포세이돈의 지팡이를 어디서 좀 구할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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