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아침에 고도근시가 되었다.
말 그대로 그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알람 소리에 손을 더듬어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알람을 끄려는데 눈앞이 흐릿해서 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마도 숙취 때문일 것이다.
숙취란 놈은 평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할 비범한 능력을 숨기고 있다가 육체의 주인이 정신을 잃고 나면 본색을 드러낸다. 밤새 뼈와 살을 반죽해 곤죽으로 만들고 달팽이관을 두들겨 패 몇 db쯤 청각을 상실하게 하고 위벽을 긁어 통증을 일으켜 정확한 위장 위치를 알려준다.
그중 가장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두통이다. 손오공은 관음보살 말에 속아 금고아를 머리에 썼다지만 나는 지난밤 내 손으로 직접 형틀을 머리에 신나게 뒤집어썼으니 누구 탓을 하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 때마다 관음보살이 주문을 외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래야 하는데 지금 너무 멀쩡하다. 다리에는 힘이 넘치고 잘 들리고 위도 잠잠하고 오래간만에 숙면을 취했는지 머리마저 상쾌하다. 문제라면 단지 앞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가만, 내가 어제 술을 마셨나?
생각해 보니 술을 마시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피곤에 절어 어젯밤에는 아예 일찌감치 자리에 누웠다. 눈을 깜빡여도 보고 비벼도 봤지만 여전히 모든 게 흐릿하게 보였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 앞으로 급하게 가려다 발을 헛디뎌 자빠질 뻔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윤곽으로 사람 형체라는 걸 알아볼 뿐 눈 코 입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코가 거울에 닿을 정도로 얼굴을 바짝 붙이자 멀쩡히 붙어있는 것들이 보였다.
눈병인가? 그래도 그렇지 하루아침에 앞이 안 보인단 말이야?
흐릿하고 안 보이는 것 말고는 통증, 이물감, 충혈 따위의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더럭 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