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불면을 허락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아는 바를 얘기해 보자면,
일단 게으르고 태평하다.
잠도 많고, 누워있는 게 세상 편하다.
에너지 레벨도 낮은 편이라 격렬한 운동이나 움직임도 좋아하지 않는다.
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 중 하나다.
예전에 건강 때문에 PT를 받은 적이 있는데
운동의 마지막은 러닝머신에서 10분 뛰는 것이었다.
트레이너에게 말했다.
자꾸 뛰라고 하면 PT를 그만두겠다고,
여러 차례 실랑이 끝에 빨리 걷는 것으로 협상을 했다.
그나마 걷는 걸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러다 보니 눈앞에서 파란 불이 깜빡이거나, 버스를 놓쳐도 뛰는 일은 거의 없다.
(거의 없다는 건 가~~~ 끔은 있다는 얘기다)
경쟁하는 것도 싫어하고 야망이라는 것도 별로 없다.
성향이 이래서인지 나는 불안을 느껴본 적이 없다.
걱정이나 고민은 있었지만 불안하다는 감정은 내 기억엔 남아있지 않다.
그런 나에게 50대 들어 만난 불안은 난생 만난,
어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그야말로 불청객이었다.
이 불청객은 예고 없이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며 불안이 느껴졌고,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중에도 갑자기 나를 두드렸다.
이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왜일까?
물론 내가 불안을 느낄 만한 요소는 많았다.
나는 언제든 일이 없어질 수 있는 프리랜서 방송작가고, 나이도 많고,
남편도 애인도 없는 싱글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고... 등등
그러나 나의 이런 상황이 하루이틀, 일이 년이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이렇게 불안하다고?
과연 이 모든 것이 갱년기 호르몬의 농간만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불안이 계속되면서 불면증도 깊어졌다.
둘 중 무엇이 먼저인지,
어떤 것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모를 상황은 답답하기만 했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나의 해결 방법은 언제나 하나다.
정면돌파.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하는 것.
일단 잠이 오지 않을 땐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밤에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일을 했다.
자다가 깼는데 잠이 오지 않으면 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일을 했다.
그러다 잠이 오면 잤고,
나가야 할 시간이면 나갔다.
그래, 내가 9시에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꼭 잠을 잘 필요는 없지
방송하면서 밤새는 건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잠에 집착하냐
물론 이건 나의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20년 차가 훨씬 넘은 방송작가였던 나는 스케줄 조절이 가능했고
프리랜서의 특성상 출퇴근 시간도 직장인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면증을 받아들이고
불면을 허락(?)하기까지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힘들었다.
이렇게 불면은 친구가 되었지만
불안은 또 다른 문제였고, 친해지기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