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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27. 2016

잊고 있던 내 과거에 대해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하늘에 그 그림자가 떠 있으면 오려다 붙인 그림처럼 보였다. 
<요시모토 바나나 ‘바다의 뚜껑’을 읽다가>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 내 이력을 공개해야 할 때가 있다. 가령 어떤 매체와 인터뷰 같은 걸 해야 할 때인데, 얼마 전에도 우연한 기회에 인터뷰할 일이 생겨 창피함을 무릅쓰고 민망한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 촬영까지 해야 했다. 그때 인터뷰어의 첫 질문은 당연 내 경력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력이 조금 독특하신데요, 가구를 전공하시고 편집 디자인을 하시다가 지금은 글을 쓰고 계세요.

글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듣고 보니 그렇다. 이것저것 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빠진 나의 이력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과거다. 무려 4년을 했다. 그러니까 본격적인 사회생활(나는 그게 편집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을 하기 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딱히 무슨 일을 하고 싶다, 어디에 취직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을 땐데, 그렇다고 전공을 살리긴 싫고 (왜냐하면 점수에 맞춰 간 과였으니까) 그래, 배운 게 이거니까 애들한테 그림이나 가르쳐볼까?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나마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만만하고 쉬운 일이었다. 게다가 출근시간이 낮 12시라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됐다. 유치부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가끔은 고등학생까지 가르치는 학원이었는데, 중고등학생은 대부분 미술 과제를 봐주는 정도였고 유초등부 아이들이 메인 타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처럼 남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말하기 싫어하고, 더군다나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 강사 일을 어떻게 4년 동안 했나 싶다. 경쟁을 요구하는 일도 아니었고 누가 무슨 일 하냐고 물으면 미술학원에서 애들 가르쳐요, 하면 딱히 빠지는 모양새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었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막연히 하고 싶은 일보다 자기가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막연히 하고 싶은 일보다 그럭저럭 잘할 수 있는 일

12시 출근에 동네 미술학원이다 보니 월급이 엄청 적었다. (그 돈을 받고 4년을 다녔던 내가 정말 세상 물정 몰랐구나, 싶을 정도) 그래서 다른 일을 더 해야 했는데 학원 출근 전 이른 아침에 빵집 아르바이트도 했었고 토요일에는 수업이 오후 2시면 끝나니까 끝나고 미술 개인과외를 하기도 했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미술 개인과외. 잊었던 과거 나의 짧은 이력은 얼마 전 집으로 날아온 개인과외교습 폐지 신고서라는 걸 보고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2002년 나름 진지하고 철저했나 보다. 시청에 개인과외교습을 신청해 자격을 받은 다음 구인 사이트에 미술 개인 과외 교습 광고를 올렸다. 그로부터 얼마 뒤 낯선 목소리의 여자에게 연락이 왔고 당시 안산이었던 여자의 집에 매주 토요일 미술 과외를 하러 다녔다. 내가 가르칠 사람은 여자가 아닌 그녀의 중학생 아들이었는데, 수업 내내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던 그 애는 자폐증을 앓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림엔 관심이 있어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은데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상태는 아니어서 개인교습을 알아본 거라고 했다. 수업 조건 중 하나는 아들을 가르치면서 자신도 같이 수업을 받겠다는 거였는데 아들과 둘이 뻘쭘한 것보다 나으니 나도 나쁠 것 없었다. 여자도 나름 나를 배려한 처사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지금 기억으론 그녀의 그림 실력 또한 만만치는 않았다.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은 걸까? 아무튼 두 모자는 매우 열심히 그림을 배웠고 실력도 탁월했다.

illust by 윤지민

그렇다고 내가 굉장한 자부심과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그들을 가르쳤던 건 아니다. 한창 놀기 좋아하는 20대 초반, 남들 다 노는 토요일 오후 학원 수업을 마치고 또다시 일하러 가야 되는 그 심정이란… 사실 수업하러 가기가 죽기보다 싫을 때도 있었다. 놀고 싶다, 땡땡이치고 싶다, 아프다고 할까? 일이 생겨 못 갈 것 같다고 할까? 매주 토요일이면 벼라 별 궁리를 다 하면서 건수를 만들곤 했다. 단 한 번도 실행에 옮겨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사람이 가진 재능이란 갈고닦지 않으면 반드시 제자리에서 멈춰 버리기 마련이다. 아니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후퇴한다. 나는 그걸 그림을 통해 몸소 깨달았다. 거침없이 그려나가던 내 스케치 실력은 과연 내가 미술을 가르쳤던 아니 배웠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엉망이다. 물론 그보다 더 잘할 수 있고 재미있는 재능을 찾았기 때문일 테지만 말이다.

잔잔한 일상에 안주하기보다 모험을 했더라면

2002년 신고해 놓고 까마득히 잊고 있던 개인과외교습 자격을 2016년 11월 폐지 신고했다. 문서를 작성해 메일로 보내달라는 시청 직원의 말에 따라 이름을 쓰고 서명을 하며 새삼 그때의 내 시간들을 떠올려 봤다. 그때도 수업 시간 전이나 이동할 땐 늘 책을 옆에 끼고 있었다. 아이들이 들이닥치기 전까지 키 낮은 책상에 앉아 소설 읽던 시간이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그때 진작 별 재미도 보람도 못 느꼈던 미술 선생이란 타이틀을 떼 버리고 좀 더 일찍 글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잔잔한 일상에 안주하기보다 모험을 하더라도 진짜 원하는 걸 찾으려고 좀 더 빨리 노력했더라면. 흘러간 시간이야 되돌릴 수 없고 그 시간 또한 어떻게든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됐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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