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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Feb 19. 2017

아이가 없을 뻔했던 내게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너무 고요하게 울고 있어서 그녀는 아주 가깝게 다가가서야 아이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횡단보도로 마중나온 엄마를 발견한 아이가 자전거를 끌고 달려왔다. 누가 안장을 가져갔는데 그게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변명하듯 말하는 아이를 내려보다가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배 쪽으로 당겨 안았다. 아이의 머리가 뜨거웠다. 
<황정은 ‘아무도 아닌’ 중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을 읽다가>



뭔가를 읽거나 쓰지 않을 땐 팟캐스트를 듣는다. 나의 팟캐스트 목록은 모두 책과 관련된 것으로 오전 시간 업무에 바로 집중하기 힘들면 메일을 확인하거나 웹서핑을 하는데, 주로 그때나 출퇴근길에 걷거나 운전하면서 듣는다. 손과 눈으론 ‘놀고’ 있지만 귀로 책 이야기를 들으면 놀아도 마냥 노는 것 같지 않다. 작년부터 듣기 시작한 요조, 김관의 ‘이게 뭐라고’는 이동진의 ‘빨간책방’보단 좀 쉽고 대중적인 느낌이라 설거지할 때나 샤워할 때, 그러니까 띄엄띄엄 들어도 될 때 듣는다. 업데이트되는 순서대로 들을 때도 있고 제목을 보고 흥미로운 주제를 골라 듣기도 하는데(결국 내 마음대로 듣는데) 최근 제목을 보고 재생 버튼에 선뜻 손이 가지 않던 방송이 있었다. 그건 아이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으로 사카이 준코의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라는 책을 다루는 모양이었다. 이 방송을 내내 미루다가 오늘 아침 출근해서, 역시나 블로그와 메일함을 뒤적거리고 주말 동안 즐겨 가는 쇼핑몰에 새로 업데이트된 상품을 둘러보며 들었다. 내가 왜 이 방송을 자꾸 미뤘나 하면… 글쎄… 질투심 같은 거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조금 복잡 미묘한 감정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한때 딩크족을 희망했다. 딩크족. 좀 생소해진 단어가 아닌가 싶은데,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지속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가리켜 딩크족이라 한다. 나 또한 결혼을 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나는 아이를, 심지어 조카도 별로 예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혼자 있길 좋아하고 혼자 책 읽는 시간을 사모했다. 아이로 인해 내 시간을 침범당하는 걸 못 참아했다. 처음부터 아이가 싫었던 건 아니다. 20대 중반,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 정도가 심해졌다. 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리다 집에 돌아오면 당시 같이 살던 네 살짜리 조카가 보기 싫을 정도였다. 그땐 결혼도 안 했고 당연히 내 아이도 없으니 아이란 존재의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알아버린 거였다. 속으로만 생각했다가 혼사가 오고 갈 땐 가족들에게 넌지시 말했고 당시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에게도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다. 그는 나의 의견을 존중했지만 내심 아이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했다. 나는 ‘무자녀’라는 바통을 그에게 넘겼고 시어머니와의 갈등에 대해선 내게 바통을 건네받은 남편이 알아서 해결해주길 바랐다.


illust by 윤지민


미술학원에서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시달린 것도 원인이지만 한때 맞벌이 문제로 같이 살았던 언니 부부, 특히 언니의 삶을 보면서 마음을 굳혔던 것 같다. 워킹맘이었던 언니는 퇴근 후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늘 뭔가에 쫓기듯 전전긍긍했다. 친정엄마가 같이 살면서 조카를 돌봐줬지만 나는 늘 아이가 우선인 언니의 삶이 못마땅했다. 졸려 죽겠는데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계속 업어줘야 했고 맛있는 음식도 편히 먹지 못했다, 제지래 하는 아이를 쫓아다녀야 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나는 좀 이기적 이게도 내가 번 돈은 나만을 위해 쓰고 싶었다. 그러니까 아이의 미래, 즉 학비나 결혼자금을 위해 내 돈과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힘든 언니를 제대로 도와주지도 않고 휴일이면 놀러 나가기 바쁜 철없는 동생이었다. 3살짜리 아이를 낳아 키우는 요즘 그때를 돌이켜보면 얼굴이 홧홧거린다. 어쩜 그렇게 안 도와줄 수 있었을까? 어쩜 그렇게 언니를 나 몰라라 했을까? 그런 나와 달리 딸 하나 아들 하나, 4살 터울 아이를 둘 키워본 언니는 지금 내 아들인 조카를 하원 시켜주고 집에 데려가 나보다 더 신나게 놀아준다. 뿐만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옷이며 영양제, 먹을거리를 엄마인 나보다 더 잘 챙겨준다. 가끔 주말에 집에 있을 때면 아이가 뜬금없이 이모를 찾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아이 없는 삶이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지금 내 아들이 세상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아이가 없는 시기에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내가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내가 딩크족을 결심했던 10년 전만 해도 이런 사회적 현상(아이 없이 살아도 괜찮다는)을 다룬 책이 없었던 반면 요즘 들어 하나 둘 출간되기 시작하는 게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이제 와서 읽어봤자 뭐하나’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이번 방송을 계속 미뤘던 이유일 것이다. 이제 ‘아이 없는 삶’은 나와 상관없는 딴 세상이 되었으니까. 아이 없는 삶의 장점에 대해 쏟아내는 패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배 아파질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특이하게도 나처럼 오래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가수 요조가 그때 이후 아이가 싫어졌다는 이야기와 비행기에서 시끄럽게 우는 아이를 어쩌지 못하는 상황을 겪고 나서 아이가 싫다는 에피소드를 말한 김관 기자, 그리고 잘 키우지 못할 것 같아서 안 낳기로 했다는 연희동 한민경 선생의 말까지 모두 다 공감하고 이해되는 말이지만 듣는 엄마인 나는 못내 불편하고 언짢은 건 사실이었다. 그건 입장이 바뀌었으니까 당연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의 폭이 넓어졌다는 게 행복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하고 남들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나는 절대로 엄마만이 쓸 수 있는 글을 못 쓰겠구나,였다. 엄마가 아니면서 엄마인척 쓰는 글은 아이를 한 번도 키워보지 못한 여자가 육아의 고통을 운운하는 거나 다름없다. 결혼 후 4년이 지나고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이 덜컥 되었고 그걸 내 눈으로 확인했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물론 절망스럽다, 가 아예 배제되었다면 거짓말이다. 그 순간은 공포였고 두려움 자체였다. 그렇게 싫다 하는 걸 겪게 되었으니 오죽하랴. 근데 딱 두 번의 순간 그 모든 게 따사로운 햇살에 녹는 눈처럼 사그라졌다. 그 한 번은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존재가 생긴다는 걸 상상했을 때였고, 또 다른 하나는 ‘엄마의 글’을 쓸 수 있게 됐다는 거였다. 거짓말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써내려 갈 수 있겠단 생각에 가슴 벅차기도 했다. 뭘 써야지 가 아니라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그러니까 내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고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모든 에피소드가 내겐 소스가 될 거란 생각에 거짓말처럼 흥분되기도 했다. 아이 없는 삶을 여전히 갈망하고 있다곤 했지만 그때의 선택을 절대 후회하진 않는다. 시간을 되돌려도 난 지금처럼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세상 모든 엄마의 이상형은 자기 뱃속으로 낳은 아들뿐이라는 말을 격하게 공감하는 아들바보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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