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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06. 2017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어머니는 여전히 암 투병 중이었고 아버지는 간장으로 졸인 반찬이 담긴 도시락을 매일 아침 내게 싸주었다. 나는 때가 되면 곰팡내가 나는 창고로 내려가 벽을 바라보며 그걸 먹었다. 그런 나날이었다. 
<황정은 ‘아무도 아닌’ 중 ‘양의 미래’를 읽다가>



6시 5분, 기상 알람을 15분 앞당겼다. 이번 주부터 아이의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내가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한다는 명목 하에 7시 30분에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가 10시 오전간식 타임까지 배고파 한다는 원장님의 말에 도시락을 챙겨 보내기로 했다. 사실 고구마나 백설기 같은 간식은 늘 싸서 보냈다. 아침부터 아이가 밥을 찾을까 싶은 생각에 도시락 생각은 못했다. 근데 아들보다 일찍 어린이집에 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도시락을 싸오는 바람에 함께 펼쳐 놓고 밥을 먹이면 덩달아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어린이집 새 학기 OT가 있어 갔다가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아침부터 식사를 준비하는 게 다소 부담스럽다는 원장님의 솔직한 이야기에 그렇다면 내 아이 도시락은 싸서 보내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도시락을 싸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먹이는 게 힘들지. 다행히도 집에선 먹여줘야 먹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선 무조건 스스로 먹는다고 한다. 자신의 수저와 포크를 야무지게 쥐고 밥을 떠먹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특하다.


첫 번째 도시락은 상대적으로 만들기 쉬운 주먹밥으로 정했다. 시중에 파는 주먹밥 셰이크를 따끈한 밥에 섞고 참기름과 아기용 간장을 살짝 넣어 잘 버무려서 한 입에 쏙 들어갈 사이즈로 동그랗게 만든다. 전날 끓여 놓은 콩나물국을 보온병에 담아 콩나물은 가위로 잘게 썰었다. 앞서 말했듯 도시락을 싸는 건 문제가 아니다. 나는 아침부터 선생님이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게 번거롭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래서 먹이기 쉬운 고구마나 떡으로 쌌던 건데, OT때 만난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되니 싸서 보내주시기만 하라고 편하게 말씀해주셔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내 아이가 함께 먹는다는 걸 알고 일부러 넉넉히 보내준 다른 아이의 엄마한테도 뒤늦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도시락을 싸며 생각 나는 사람은 오로지 친정엄마였다


나도 도시락 세대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2학년 내 조카들만 봐도 요즘은 무조건 급식이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그 끝 무렵부터 급식제도가 생겼고 그마저도 제대로 실행된 게 아니라 테스트 단계였다. 워킹맘이었던 우리 엄마는 늘 도시락을 싸서 점심시간에 갖다 주었다. 엄마는 일부러 따뜻한 밥 먹이려고 그랬다곤 했지만 아침 업무가 바빠 그렇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근데 난 그게 싫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가방이나 책상 서랍에서 도시락을 꺼내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는데 나는 그제야 교실 밖으로 나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엄마가 기다리는 정자까지 뛰어가야 했다. 물론 엄마가 일찍 오면 교실 앞까지 도시락을 가져다 주셨지만 내 친구들이 나 때문에 밥을 바로 먹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미안함 때문에 불편했다. 지금 생각하면 홀로 딸 둘을 키우며 도시락 한번 빼 먹은 적 없는 엄마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만 말이다. 고작 어린이집에 보내는 도시락 주먹밥 정도지만 이른 아침 도시락을 싸면서 드는 생각은 오로지 우리 엄마뿐이었다.

illust by 윤지민

결혼 하기 전 직장 생활 당시도 한동안 동료들끼리 도시락을 먹었던 때가 있었다. 밖에 나가 사먹지만 않아도 한 달에 15만원은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엄마를 꼬드겨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그렇게 아낀 돈을 엄마 용돈으로 주지도 않을 거면서 엄마한테 도시락 싸달라고 하는 건 왜 그렇게 당당했을까? 돌이켜 보니 반찬 값 한번 제대로 챙겨 드린 적이 없었다. 반면 엄마는 귀찮다고 하면서도 참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싸주었다. 점심시간마다 중고등학교 때처럼 엄마가 무슨 반찬을 싸줬을까 궁금해하며 도시락을 여는 재미도 쏠쏠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도 참 감사한 추억이지만 내가 잊을 수 없는 도시락은 언니가 싸줬던 도시락이다. 딱 한 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고등학생이고 언니가 대학생이었다. 엄마가 친구들과 이른 아침부터 관광을 떠나셔서 내 도시락을 언니가 싸야 했다. 우리 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칼을 워낙 무서워해서 사과도 못 깎는 사람이다. 엄마 없을 때 차려 준 밥이라곤 계란밥이나 라면이 전부였다. 그런 언니가 무슨 도시락을 쌀까, 싶었는데 웬걸 엄마가 해준 것 보다 맛있는 도시락이었다. 동그란 소시지를 달걀에 잘 무쳐 가지런히 넣었고 김치도 그냥 넣지 않고 한번 볶아줬다. 맛이야 엄마가 더 좋았겠지만 반찬통에 은박지로 벽을 세워 햄과 김치볶음을 분리해준 센스와 깔끔한 비주얼이 맘에 들었다.


내일 도시락 반찬을 걱정하던 그때가 더 살기 좋았던 건 아닐까?


신혼 초에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쌌다. 당시 나는 출근이 10시까지여서 상대적으로 오전 시간이 좀 여유로웠는데 (신혼이어서 그랬겠지만) 밥, 반찬은 물론 국까지 싸서 보내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반찬이라고 해 봤자 달걀 말이나 스팸구이, 두부 부침 정도가 전부였겠지만 매번 남편에게 도시락 후기를 묻는 일은 왜 그렇게 긴장되던지… 전부 신혼이니 가능했다. 요즘은 워낙 편의점 도시락이 잘 나와서 일부러 점심을 편의점에서 먹는 사람이 늘어날 정도다. 학부형들이 도시락을 싸는 일은 거의 없다. 소풍 때도 김밥 전문점에서 사는 게 더 편하고 맛있다. 아, 그러고 보니 요즘 소풍에는 김밥을 안 싸간단다. 평소에 너무 접하기 쉬운 음식이 돼버려서. 친정 엄마가 가끔 말한다,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애들 키우기 얼마나 편하냐고. 그런데 한편으론 내일 도시락 반찬은 뭘 싸주나, 정도를 고민했던 그때가 자식들 더 키우기엔 차라리 편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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