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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13. 2017

지금 내게 오는 책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자신은 밝은 조명 옆에 생겨나기 마련인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꼬마전구였다. 조명이 꺼졌을 때 대용품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세상을 밝히지는 못하는 존재였다. 
<은희경 ‘중국식 룰렛’을 읽다가>



새로 산 북라이트는 빛이 고르고 밝아 눈이 덜 피로했다. 전엔 책날개 등에 꽂아서 쓰는 작은 북라이트를 썼는데 아무래도 불빛이 약했다. 양장이 아닌 책일 땐 흐물거리는 책의 물성 때문에 빛도 흔들렸다. 어쨌거나 새로 산 북라이트가 맘에 든다. 밤이 더 기다려졌다. 식구 1, 2호가 잠든 밤 오롯이 혼자 책을 읽을 수 있는 그 시간 말이다. 금요일 밤 잠들기 전에 읽을 책은 일본 장편 소설인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다. 낮에 이틀 전에 주문한 8권의 책이 도착했는데 그중 한 권을 선택한 것. 나는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쭉 읽지 않는다. TV 채널 돌리듯 책도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다. 그래서 읽는 책의 종류에 따라 보는 시간대가 다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잠들기 전에는 주로 장편 소설을 읽는다. 잠이 늘 부족해서 안 그래도 자기 전에 책을 읽는 게 버거운데 그나마 긴 호흡으로 흥미를 끌만한 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책을 펼친 뒤 15분가량 뒤엔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기 일쑤다. 어떤 날은 책을 갖고 이부자리에 들지만 펼쳐보지도 못하고 휴대폰으로 각종 SNS만 주야장천 보다가 잠들 때도 있다.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는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호흡 짧은 글이 여러 개 실린 게 좋다. 뭔가 나를 다그치고 깨우칠 수 있는 내용이면 오케이다. 일하러 간다는 느낌, 뭔가 해내야 한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책, 그러니까 나를 채찍질하는 책이어야 되나 보다. 간혹 집에서 음식을 할 때 찌개나 국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책을 펼친다. 이때는 시집을 읽는다. 시집은 자동차에도 두 권정도 꽂혀 있는데, 신호가 길거나 차가 밀릴 때 읽는다. 곁에 책이 없을 땐 자동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게 됐는데 요즘은 일부러라도 휴대폰은 가방에서 꺼내지 않고 차 문짝 수납함에 꽂아놓은 시집을 아주 잠깐이라도 펼쳐 본다. (좀 위험하긴 하다. 다만 차가 꽉 막혀 움직일 생각을 안 할 땐 유용하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것 같은 느낌 때문)


잠자기 전엔 장편소설, 출근길엔 에세이, 밥할 땐 시집


이렇게 때마다 책을 돌려가며 읽는 것과 한 권을 쭉 읽는 것 중 어느 게 더 낫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나름 규칙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내 마음대로, 내키는 걸 읽는 것’뿐이다. 책을 한 권씩 사는 게 아니라 여러 권을 한꺼번에 구입한 것도 계기가 됐다. 5권 이상의 책이 도착하면 일단 뭐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된다. 어렵게 하나를 골라 읽기 시작하지만 다른 책 내용이 너무 궁금해진다. 그러면 읽던 걸 덮어놓고 다른 책을 펼친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TV 채널처럼 돌려 읽자, 지금 펼친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부터 벗어나 보자 했던 것이다.

illust by 윤지민


나는 책에 밑줄을 많이 긋는 편이다. 밑줄을 긋는 펜의 종류도 책의 장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랬던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늘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예를 들어 소설이나 에세이는 볼펜이나 펜으로, 주로 검은색이나 파란색을 쓴다. 자기계발서는 형광펜(요즘 내가 쓰는 형광펜은 고체 형광펜으로 형광 색연필 같은 건데 부드럽고 번지지 않아 좋다. 무엇보다 수시로 밑줄을 긋는데 뚜껑을 열고 닫을 필요 없어 좋다)으로 긋고 시집은 연필을 사용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늘 이래 왔다. 굳이 따지고 보면 소설과 에세이를 주로 읽다 보니 늘 곁에 있는 펜을 사용해 볼펜이나 펜을 쓰는 것 같고 자기계발서는 필사를 따로 해두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다음번에 봤을 때 눈에 제대로 띄었으면 하는 바람에 굵고 색이 있는 형광펜을 쓰는 것 같다. (뭔지 모르게 공부하는 느낌도 더 들고) 시는 거의 읽지 않기 때문에 시집은 좀 깨끗한 편인데 책이 워낙 작고 얇다 보니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펜보다 힘을 빼고 살짝 그어야 하는 샤프를 사용한다. 사실 밑줄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다.


펼친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소 까다롭게 구는 것 같아도 그냥 맘대로 하는 거다. 규칙은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 한 달 평균 5~6권의 책을 읽는다. 어쩌다 꽂힌 책은 출퇴근 길, 잠들기 전 상관없이 끝까지 한 권만 읽을 때도 있다. 중요한 건 한 권을 단번에 다 읽어야 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읽다가 재미없으면 우선 덮어 놓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도 된다는 거다. 책도 시기와의 궁합이 중요해서 지금 당장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고 나와 맞지 않는 책은 아니다. (물론 저자에 따라 진짜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 대부분은 지금 잘 안 읽혀 두세 달 정도 묵혔다가(?)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꺼내 읽어보면 그땐 왜 안 읽혔을까 싶을 만큼 너무 재미있게 술술 잘 넘어갔던 적이 꽤 많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탄력 받아서 그 저자의 전작을 다시 역으로 읽어본 경험도 흔하다.


독서는 부담을 느끼는 순간 진도가 안 나간다. 너도 나도 읽은 베스트셀러여서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흥미가 없는 경우 괜히 불안을 느끼기도 하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흥미롭게 읽어도 나에겐 맞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나부터도 그런 책이 수두룩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도 많기 때문) 큰 맘먹고 샀는데 읽히지 않는다면 과감히 덮어도 좋다. 내가 읽어야 할 책이라면 반드시 다시 만나게 돼 있다. 책은 그렇게 내게 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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