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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30. 2017

자기 삶을 통과해 나온 언어를 쓰자

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분투기

요즘 나는 30분이라도 더 자는 게 ‘덜’ 손해 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퇴근 후 집에 가서 아이에게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시켜 잠자리에 들게 하면 보통 9시쯤 되는데 가능하면 그때, 아이와 함께 자려고 노력한다. 아니 노력하지 않아도 잠은 온다. 흔히 말하는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 아직 불면증이라 할만한 증상은 겪어 본 적이 없다. 사실 잠이 안 오면 나는 땡큐다. 책 읽으면 되니까. 책 읽고 싶은데 잠이 너무 쏟아져서 머리맡에 책을 두고 펼쳐보지도 못한 채 잠드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평일에는 아침 6시 15분에 일어난다. 자는 동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이른 아침 휴대폰 알람이 울리면 눈을 뜬다. 그렇게 잠에서 깨야 할 때, 그때의 심정이 딱 오늘 말하려고 하는 ‘파비오 볼로’의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나오는 이 문장이다.


소설 속 문장:
벌써 아침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고 이제 막 잠자리에 든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시계를 잘못 맞추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뿐이었다.
<파비오 볼로 ‘내가 원하는 시간’ 중에서>



파비오 볼로는 이탈리아 작가로 나는 ‘아침의 첫 햇살’이란 소설을 읽고 이 작가에게 완전 반해 버려 이번에 ‘내가 원하는 시간’까지 찾아 읽었는데, 아직 우리나라에 이 작가의 책이 두 권밖에 번역되지 않았단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이 슬픈 소식을 들었다면 어느 출판사건 빠른 시일 내에 파비오 볼로의 다른 책을 번역해주시길 바란다. 어서… 빨리 좀…


그는 일상의 위대함을 사랑하는 작가다. 그가 라디오 방송에서 낭독했다는 <행복이란?>을 읽어 보면 그가 무엇을 쓰고자 하는 작가인지 좀 더 쉽게 알 수 있다.

행복이란 그것이 전부라고 믿고 쫓아가서 쟁취하는 사랑이 아니다. 강렬하고 화려한 느낌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행복이란 고층 빌딩을 오르내리면서 날마다 시험을 치르듯이 끊임없이 감행해야 하는 도전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은, 행복은 작고 소중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의 향기는 행복을 느끼기 위한 우리들만의 아주 조그만 예식이다. 행복은 아름다운 노래의 음들 몇 개로만 이루어져 있다. 따뜻한 색깔의 책 한 권으로 족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스쳐 지나가는 음식 냄새로, 어떤 때는 고양이나 강아지의 코를 부비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할 때가 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뒤꿈치를 들고 가슴 졸여가며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행복을 느끼는 데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조그만 불꽃놀이면 족하다는 것을, 별과 태양이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봄의 향기가 우리를 겨울잠에서 깨어나게 할 수 있고, 나무에 기대앉아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는 걸 배우게 된다. (중략) 우리는 예기치 못했던 전화와 문자를 받는 사소한 순간들이 진정으로 행복한 순간이라는 걸 깨닫는다.

나는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단 한순간도 외국 작가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다. 내가 유독 서양 문학에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는 큰 그림 즉, 나라나 국가적 배경 혹은 문화에서 이야기를 뽑기보다 아주 디테일한 일상, 즉 어디나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의 하루하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의 책에는 내가 수시로 그어댄 밑줄이 넘쳐난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공감이 되고 때로는 생각하는 것조차 비슷해서 이 작가 도대체 뭐지?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책 자랑이 너무 길어졌다. (그만큼 강력 추천하는 책이다, 물론 나와 취향이 비슷해야겠지만) 이번에 이야기하려는 문장을 읽자마자 이건 아침잠이나 건강에 관한 카피를 쓸 때 응용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용이 아침에 부족한 잠, 일어나기 힘든 상황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몸에 활력이 떨어지거나 많이 피곤할 때 특히 아침 기상이 힘들다. 몸이 천근만근이고 땅으로 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알람을 계속 5분씩 늦춰보지만 결국 몸은 더 쳐질 뿐이다. 이런 상황을 응용해서 피로회복에 좋은 홍삼젤리를 팔아보자.


카피:
메인 타이틀:
일어나지는 월요일


서브 타이틀:
이제 막 잠자리에 든 것 같은데
벌써 아침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알람을 잘못 맞춘 건 아닐까?
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오늘 아침도 눈을 떴다면!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일어나기 힘든 아침은 월요일 아침일 것이다. 물론 일주일 내내 그렇겠지만 특히 더 힘든 날이다. 그래서 메인 타이틀은 월요일을 넣어서 써보기로 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어땠으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졌으면 좋겠다!’라는 결론. 그래서 메인 타이틀을 ‘일어나지는 월요일’로 잡았다. 일어나진 다는 건 일어나고 싶은, 것과는 다르다. 저절로 몸이 거뜬히 일어나는 현상을 이야기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따라서 몸이 ‘알아서 일어나지는’ 아침, 그날이 월요일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피로가 개선되고 면역력이 좋아지면 당연히 몸이 가뿐할 것이다. 피곤이 계속 쌓이지 않고 그날그날 풀어준다면 아침이 더 거뜬하다. 여기선 예로 홍삼젤리를 들었지만 그 외 다양한 건강식품이나 영양제에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고 정반대로 운동기구나 편안한 잠자리도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니 침구 등에 적용해 볼 수도 있겠다. 


퇴근길 신도림역에서 1호선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낭만서점’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 최근 ‘공터에서’라는 신작 소설을 낸 김훈 작가가 나와 이야길 하고 있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했다.


‘글은 삶의 구체성과 일상성을 확보해야 한다. 즉 생활에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글은 공허하고 헛되다.’ 


귀가 솔깃했다. 볼륨을 더 키웠다.


‘나는 글을 쓸 때 되도록 개념어를 쓰지 않는다. 개념어는 실제가 존재하지 않고 언어만 존재하는 것 같다. 자기 삶을 통과해 나온 언어를 써야 한다.’


그 자리에 온 습작생들이 김훈 작가에게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질문한 것에 대한 답이었다. 소설뿐만 아니라 카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생활에 바탕을 두어야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어야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다. 사람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 하는 말에 집중하고 신뢰도가 높아진다. 그만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활에 빗대어 카피를 쓰고 이야길 만드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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