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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y 29. 2017

네가 울 때 엄마가 없었다는 것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손원평 ‘아몬드’를 읽다가>



지난주 평일 오후, 좀처럼 잠이 달아나지 않아 습관적으로 휴대폰 속 아이 사진을 하나씩 넘겨 보고 있을 때였다. 손 위의 휴대폰에서 드르르 진동이 울렸고 커다랗게 보이는 수신자 이름에 ‘OO어린이집’이라고 떴다. 본능적으로 노트북 시계를 봤다. 오후 3시 38분. 아직 하원 할 시간이 아닌데 왜 전화하셨지?라고 갸우뚱하며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원장님 안녕하세요?”
“OO 어머니 안녕하세요,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네, 말씀하세요.”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원장님의 다소 불안한 목소리 톤으로 보아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저… OO가 좀 다쳤어요. 책상 모서리에 이마를 찧었는데 멍이 엄청 크게 생겨서, 점점 부어올랐어요. 약 바르고 찬물 찜질을 해주긴 했는데… 아이구 어쩌면 좋아… 제가 지금 사진을 보내 드리면… 더 속상하실 테죠..? 너무 죄송해요 어머니…”


아이가 다쳤다는 말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적당한 문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원장님과 달리 나는 오히려 차분했다. 어디 부러지거나 생채기 난 게 아니라 멍든 정도라 그럴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이가 다치는 상황을 직접 목격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보이진 않지만 목소리에서 좌불안석이 느껴지는 원장님의 감정 상태와 달리 내가 그녀를 진정시켜야 할 것만 같았다.

“OO가 많이 울었나요? 아니, 어쩌다가…”
“네… 많이 울었어요… 담임 선생님이 잠시 다른 거 하는 사이에 혼자 앉은뱅이책상을 밀다가 그만 모서리에 이마를 찧은 모양이에요. 멍이 내일이면 눈 쪽으로 내려올 것 같은데, 어머니 너무 놀라실 것 같아서… 미리 전화드렸어요..”

아이가 다쳤다고 할 때 화를 내는 게 맞는 건가?


많이 울고 많이 아파했다는 솔직한 대답이 오히려 고마웠다. 상처에 비해 아이가 덜 울었다거나 괜찮아 보인다는 말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니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당연히 다친다. 얼마 전 5월 황금연휴 때 장장 일주일 동안 아이를 데리고 있어 보니 짓궂기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루하루 다른 사내 아이라 그런지 내가 뻔히 앞에 있는데도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낼 만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탱탱볼 같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사소하게 다쳐 올 때마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집에서 내가 봐도 아이는 다친다, 다음부터 더 잘 보살펴 달라, 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처가 꽤 큰 모양이었다. 통화를 끊고 원장님이 카톡으로 보내준 아이 사진을 보니 이마가 코보다 더 튀어나와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코가 그리 높진 않지만 어쨌든 퍼렇게 퍼지는 멍 가운데는 점점이 모인 피 점막이 훤히 보였다. 하마터면 이마가 찢어질 뻔한 모습이었다.


이 상황에 화를 내는 게 맞는 건가. 아이를 대체 어떻게 보는 거냐고, 왜 책상을 밀게 놔뒀냐고 다그치는 게 맞는 건가? 울먹거리는 원장님과 달리 그럴 수 있죠, 라고 대답하는 내가 이상한가? 이번엔 좀 심하게 다쳤다는데, 그렇다면 당장 쫓아가 아이를 데려오는 게 맞는 건가.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누군가 이렇게 하라고 해답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마가 찢어지기 일보직전인 아이의 사진을 보고도 나는 원장님의 기분을 우선 고려하고 있었다. 여기서 화를 내면 아이에게 좋을 게 뭐가 있을까? “괜찮습니다, 녀석이 요즘 부쩍 뛰어다녀요. 개구쟁이잖아요…”라고 대답하는 내가 과연 엄마로서 옳은 대처인 건가…

illust by 윤지민


아이가 태어나면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단 말이 있다. 내 아들은 온 가족이 키운다. 그러니까 우리 식구뿐만 아니라 외할머니, 이모, 이모부, 사촌 형, 누나… 워킹맘인 나를 대신해 하원을 맡는 외할머니와 가끔 할머니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평일 5일 중 두 번은 이모가 아이를 데려가 내가 퇴근할 때까지 돌봐준다. 이모인 나의 언니는 마트에 갈 때마다 조카 먹거리를 먼저 챙길 정도다. 아이 둘을 먼저 키워봐서 인지 어느 때 뭘 먹여야 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다. 이모부는 장난감 담당이다. 엄마 아빠가 비싸서 엄두도 못 내는 장난감을 사준다. 그러다 보니 원장님은 외할머니와 이모의 원망과 걱정까지 두려워(?)하는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부터도 정작 엄마인 내가 드러낼 수 있는 감정보다 이 사태를 보게 될 친정엄마를 진정시키고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 이모를 달래야 했다. 친정 엄마 다음으로 가장 큰 집안 어른인 나의 형부는 아이의 이마를 보며 책상 모서리에 찧은 게 맞냐, 누구한테 맞은 것 아니냐는 무서운 추측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는 얼마나 더 혼자 아프고 슬퍼해야 할까?


가끔 팔이나 다리에 작은 상처가 보일 때면 “이거 누가 그런 거야?” 라고 아이에게 묻는다. 이젠 제법 의사표현을 할 줄 알게 되어서 “OO이가”라고 몇 번을 물어도 똑같이 한 친구의 이름을 말한다. 그럼 그 아이가 그런 게 맞는 거다. 아직은 거짓말을 모르니까. 그날 저녁 퇴근 해 집에 돌아가 이마에 시퍼런 훈장을 달고 온 아이를 한참 안아준 다음 이마를 가리키며 “이마 이거 누가 그랬어요?”라고 물어보니 아이는 나의 시선을 회피하고 대답을 미루더니 자그맣게 “챡샹(책상)”이라고 대답했다. 휴… 그래, 너 혼자 놀다가 그런 게 맞긴 맞나 보구나. 나는 괜히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를 재워놓고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퍼렇게 멍든 이마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속상한 건 아이의 얼굴에 생긴 상처보다 다치고 난 뒤 아프고 놀라서 소스라치게 울었을 때 분명히 엄마를 부르짖으며 울었을 텐데, 그 옆에 엄마인 내가 있어주지 못했다는 거였다. 선생님이 달래고 안아준다 한들 엄마 품 같을 리 없다. 앞으로 내 아들은 일하는 엄마를 둔 탓에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홀로 아픔과 슬픔을 참아야 하는 걸까. 기운이 쏙 빠지는 하루, 나는 깊이 잠든 아이 옆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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