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Sep 01. 2017

고운 경미 씨

설명서 대신 읽는 소설

피부 미용에 관한 제품 정보에 있어 경미 씨는 거의 모르는 게 없었다. 그녀는 그 분야의 얼리어답터였다. 매번 신기한 물건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경미 씨는 대놓고 자랑하는 법이 없어 더 신뢰가 갔다. 




인사과 경미 씨의 피부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어쩔 수 없이 움츠러드는 걸 느낀다.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같이 점심이라도 먹을 때면 최대한 그녀와 멀리 떨어져 앉아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내가 경미 씨보다 나이가 두 살이 많지만 그건 딱히 합리화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었다. 경미 씨의 피부를 보면 손으로 쓱 문질러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묻어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맨 얼굴은 아닐 텐데 화장이 피부에 완전히 곱게 밀착되어 그런지 원래 피부가 그런 것처럼 보였다. 건조하고 텁텁해 보이는 내 얼굴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근무 중 안경을 써서 콧등에 밀리는 파운데이션을 휴지로 닦아낼 때마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그녀는 모를 것 같았다. 어쩜 저렇게 피부가 좋을까,라고 마냥 부러워만 할 수는 없는 게 경미 씨는 그만한 노력을 했다. 


피부 미용에 관한 제품 정보에 있어 경미 씨는 거의 모르는 게 없었다. 그녀는 그 분야의 얼리어답터였다. 매번 신기한 물건으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경미 씨는 대놓고 자랑하는 법이 없어 더 신뢰가 갔다. 그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피부를 위해서 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한 번은 직원 휴게실에서 그녀가 뭔가를 얼굴에 댄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걸 보았다. 그 물건에선 뭔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나와 함께 휴게실에 갔던 최는 그런 경미 씨를 발견하고 10초 정도 뚫어지게 보더니 “저건 또 뭐지?”라며 다급히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경미 씨, 경미 씨. 이건 또 뭐야?”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행히 자는 건 아니었다) 최의 태도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여서 저절로 인상이 쓰였다. 하지만 경미 씨가 들고 있는 낯선 물건이 궁금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슬쩍 최에게 묻어 그녀가 들고 있는 걸 살폈다. 


“아, 이거요. 휴대용 가습기요.”


경미 씨는 좀처럼 당황하지 않고 물건을 최에게 건네며 “해보시겠어요?”라고 말했다. 

최는 냉큼 받더니 “이게 어디에 좋은 거야?”라고 물었다. 


“당연히 피부 보습에 좋죠? 요즘 너무 건조해서요. 저는 미스트 대신 이렇게 갖고 다니면서…”


원래 그런 줄 알았지만 이 정도 인 줄은 몰랐던 최는 경미 씨가 들고 있던 휴대용 가습기를 낚아채듯 뺏어 손에 쥐어 보았다. 경미 씨는 이런 경험이 많은지 당황하지 않고 최가 뺏어간(?) 가습기의 위치를 얼굴에서 15센티미터가량 떨어뜨려 자리 잡아주었다. 


“지금은 화장하셨으니까 15센티미터 정도 떨어져서 사용하는 게 좋고요, 맨 얼굴이실 땐 조금 더 가까이, 10센티미터면 돼요. 그리고 그때는 여기 진동 기능을 켜서 피부에 대시면 마사지가 되는데 수분이 더 잘 흡수돼서 촉촉한 게 오래 가요.”


“그래? 진동을 얼마나 해?”


“음… 3분에서 5분이요.”


오호라,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최는 그 물건이 마치 자기 것인 양 이번에는 경미 씨처럼 눈까지 감았다. 그런 최가 민망해진 내가 안절부절못하자 경미 씨는 괜찮다는 듯, “박 대리님도 해보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당황한 나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거 충전하는데 오래 걸려?”


“아뇨. 한 시간 반 정도 충전하면 한 시간 정도는 쓸 수 있어요. 여기 헤드 부분은 거울처럼 쓸 수도 있고요.”


단 한 번의 찡그림 없이 최의 분별력 없는 행동에도 차분하게 대해주는 경미 씨를 보면서 고운 피부는 노력도 노력이겠지만 어쩌면 저런 마음씨에서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최의 피부는 아무리 좋은 기구를 쓴다 한들 좋아질 리 없을 것 같았다. 



끝. 


<휴대용 가습기 편>

*소설 속 상품이 궁금하다면 클릭 


                                                                                                                  

*매뉴얼 노블은 어려운 설명서를 잘 읽지 못하는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 연재물입니다. 

어려운 설명서, 복잡한 구매 후기 읽기보다 짧은 소설 한 편으로 제품이 이해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현재 29CM 앱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드라이브 인 서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