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유미 Jan 19. 2018

당신의 이야기, 써도 괜찮습니까?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일반적인 주제를 경계하라. 일상생활이 제공하는 것들에 매달려라. _라이너 마리아 릴케

<바버라 애버크롬비 ‘작가의 시작’을 읽다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는 격주로 김주혁 작가가 진행하는 ‘숏컷’이란 코너가 있었다. 매 회마다 작가를 초대해 그의 책 이야기와 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데, 참 좋아하는 코너였다. 무릇 글 쓰는 사람, 책 좋아하는 사람 치고 작가가 출연해 이야기 나누는 프로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 몇 회였는진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정영수 소설가가 출연해 소설을 쓸 때 어떤 점이 좋으냐는 질문에 자신이 느낀 감정을 ‘쓰는 것’으로 표출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일들을 자신은 글로 표출함으로써 감정을 해소한다는 말에 나 또한 공감했다. 업무에 필요한 다양한 글쓰기 외에 틈 날 때마다 소설을 습작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살면서 겪은 일, 즉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감정이 풀어지고 축적되는 걸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쓰고자 하는 사람이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쓰면서 풀어지고
축적되는 감정들 


물론 평소 내 일상 패턴은 집-회사-집 가끔 주말을 이용한 짧은 여행이 전부인 만큼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할 소지는 그리 많지 않지만 집과 회사를 오가면서 듣고 보는 것들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아주 별거 아닌 것일지라도 언젠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반드시 메모를 해놓는다. 그런 메모로 매주 써야 하는 연재도 빼먹지 않고 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마주친 20대 여성의 행동이나 대화 혹은 버스에서 마주친 고등학생의 통화 내용,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겪은 에피소드 그리고 직장동료와 점심시간에 나누었던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에 관한 이야기, 나의 가족이 무심결에 한 행동과 대화까지. 찾고자 하면 셀 수 없이 많다. 

illust by 이영채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 아니라 소설 습작도 가상에 의존하기보단 경험한 것에 빗대어 쓰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좋아하는 소설 장르도 SF 같은 판타지물이나 서사극이 아닌 현대물, 즉 내가 겪을 법한 소재를 담은 것에 매력을 느낀다. 내가 쓸 수 없는 것보단 쓸 수 있는 것에 더 갈증을 느낀다. 한 번은 아이의 돌잔치 즈음 겪은 일을 써서 공모전 단편소설 부분에 응모하기도 했다. (결과는 묻지 말자) 상대 운전자인 택시기사의 100% 과실이었는데 사고 당시 보험처리 등 정신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소설로 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좋아하는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 겪은 일 등을 소설이나 에세이 소재로 자주 쓰는데, 하루는 그의 누나가 그를 시부야 역에 있는 다방으로 불러내 그가 쓴 글을 내밀면서 “우리의 추억은 너만의 것이 아니라 가족의 것이야”라고 제법 단호하게 말했단다. 혼나는 분위기였을 법한 그 상황에서도 감독은 아 정말 좋은 말이다. 나중에 대사에 써먹어야지, 했단다. 감독이 누나의 그럴듯한 말을 듣고 얼마나 반가웠을지 동감이 된다.


겪고 듣고 본 모든 것이
글쓰기 소재가 된다 


일상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을 때마다 불편하고 짜증 나고 기쁘고 슬프다는 단순한 감정에서 벗어나 이 또한 글쓰기 소재가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 단조로운 내 삶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옛날부터 우리 엄마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소설 한 권, 아니 열 권은 나와!”


나도 그렇다. 나도 어렸을 적부터 경험해온 크고 작은 이야기만 모아도 소설 한 권은 충분히 나온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막상 쓰려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입 밖으로 내뱉는 실언을 하진 않는다) 특히 우리 가족과 관련해서 쓰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있는 그대로 쓰자니 가족이 좀 불편해할 것 같고 각색을 하자니 내 능력 밖이다. 이걸 써서 낸다 한들 공모전에 당선될 리도 만무한데 벌써부터 만약 당선되면 내 글을 읽고 가족이 상처받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부터 하는 어이없는 나다. 요즘 틈틈이 읽고 있는 바버라 에버크롬비의 ‘작가의 시작’이란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이야기를 쓰느냐, 가족과의 불화를 피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프로 작가라면 누구나 전자를 택해요.” (이사벨 아옌데) 


그러고 보면 나는 뛰어난 작가가 되기엔 아직 너무 새 가슴 인지도 모르겠다. 유려한 문장을 고민하기 전에 우리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담력부터 키워야 하는 건 아닐는지. 반면 욕먹을 각오로 쓰는 글도 나쁘지 않겠다. 전날 4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하고 출근해서 정신이 차려지지 않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중 위에서 언급한 ‘작가의 시작’을 아무 곳이나 펼쳐 읽기 시작했다. 참 신기한 게 그냥 펼쳤을 뿐인데 오늘 이 글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일주일 내내 이야기를 구상하려 시도한 소설가 제임스 설터가 책이 거의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지만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전한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는 다시 페이스를 찾고 친구에게 이런 문장을 쓴다. 


“우리는 단 하나의 문장을 쓰기 위해 온 세상을 소비해야 하지만, 이용 가능한 것의 일부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지. 나는 이런 무한성, 이런 끝없음을 사랑한다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개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