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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01. 2018

잘못된 책을 받은 것 같습니다

1일1리뷰: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의심스러운

제목이 유독 끌리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 이번 신작 ‘저물 듯 저물지 않는’ 또한 제목이 탁월하다. 가장 좋아하는 책의 제목은 ‘한낮인데 어두운 방’이다. 제목만큼 내용도 좋았다. 불륜 이야기다.

불륜을 아름답고 나른하게 포장하는데 일가견 있는 작가가 에쿠니 가오리다.


‘저물 듯 저물지 않는’을 읽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


또 어떤 이야기로 매력 발산하시려나 궁금해하며 읽기 시작한 책. 초반 몇 페이지 읽는데 이상한 부분에서 글이 딱 끝나 버린다. 마침표도 없이. 마침표라도 있으면 아 이런 의도겠구나 하는데 마침표가 없으니 참 이상했다. 긴가민가해서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게임에 열심이던 남편에게 물었다.

당시 찍어놨던 페이지.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 수, 에서 끝났다.

“이거 잘못된 것 같지?”


남편은 내가 건넨 페이지를 힐끗 보더니 “그러네”라고 대답했다. 일단 도그 지어로 표시해 두고 계속 읽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 또 그런 부분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괜히 책 표지에 있는 출판사 이름을 체크한다. 큰 출판사에서 이런 실수를 하나?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자던 아이가 깨서 책 읽기를 중단했다. 그러다가 얼마 뒤 짬이 나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그런 부분이 또 나오는 거다. 갑자기 뚝, 마침표도 없이 끝나는. 거참 이상하다 생각한 나는 백 프로 잘못된 책이구나 싶어 다음 날 아침 예스24 고객센터 1:1 게시판에 글을 남긴다.


“잘못된 책이 온 것 같습니다.”


얼마 뒤 고객센터에서 친절한 답장이 왔고, 일단 불편을 끼쳐 죄송하단 말과 함께 확인 과정이 필요하니 잘못된 페이지를 알려주거나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거였다. 그래야 자기들이 출판사에 문의할 수 있다고. 일리 있는 말이다. 나는 표시해둔 페이지의 쪽수를 적다가 아니다 싶어 아예 휴대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근데 뭔가 뒤통수가 싸해지기 시작했다.

‘저물 듯 저물지 않는’은 그동안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던 방식으로 쓰였다. 주인공 미노루는 책 읽는 게 전부인 상속자로 돈이 아주 많아서 책만 읽으며 지내는데 그가 읽는 책의 내용이 고스란히 나온다. 그러니까 미노루가 읽는 부분을 독자인 나도 읽는 것이다. 미노루가 읽는 책 내용도 나오고 우리는 미노루의 일상을 읽는다. 그러니까 에… 이게 왜 이렇게 표현하기 힘든 거냐. 미노루가 책을 읽다가 누군가가 와서 문을 열러 밖에 나가는 장면에서 그가 읽던 책의 내용이 뚝 끊기는 거다. 그걸 책에서는 마침표 없이 끝나는 것으로 표현한 것. 한 문장을 끝까지 읽지 않고 누군가를 맞이 하거나 대화를 했기 때문에 마침표는 당연히 없는 것. 그런 부분이 대여섯 군데 나오고 나는 그게 잘못된 거라 오해했던 것이다.


고객센터에 내가 올린 문의 글을 지웠다. 이런 방면에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창피했다.

근데 오해한 사람이 나뿐이려나? 은근 궁금함.


앞서 말한 주인공 미노루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밍숭 밍숭 하게(늘 그녀의 소설답게) 전개되지만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원동력은 반드시 있다. 나는 그녀의 나른함이 좋다. 제법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된다. 내가 오해했던 책의 방식이 새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소설 속의 (미노루가 읽는) 소설도 흥미롭다. 그녀 답지 않는 피 튀기는 스릴러 물이라 더 그럴지도.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미노루가 너무 부러웠음은 말할 것도 없다. 정말 틈만 나면 책을 읽는대다가 돈이 매우 많고 혼자 살고 인기가 많다.



#저물듯저물지않는 #에쿠니가오리 #소담

#에쿠니가오리식 소설이 고팠던 사람이 읽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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