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리뷰: 나의 건강은 짜증 낼 자격이 없다
너무 오랜만에 쓰는 책 리뷰다. 책이 나오고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하며 이유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5월이 꽤 길게 느껴진다. 쉬는 날이 이렇게 많은데도 왜 때문에 아직 17일? 한편으로는 6월에 잡힌 행사가 너무 많아서 천천히 갔으면 좋겠는 마음도 없지 않다. 당연히 책을 읽을 시간도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줄었다. 허기사 내가 책을 읽는 시간이라곤 출퇴근 지하철이 전부인데 너무 피곤하다 보니 그 시간에 주로 눈을 감고 멍하니 있거나 잠을 잤다. (잠을 잔 날은 굉장한 행운이 따른 날. 앉아서 갔다는 이야기!)
두어 달 전에 회사에서 조직개편이 있었고 그에 따른 자리 이동이 있었다. 사무실 내 자리에는 내 책들만 꽂힌 책장이 있는데 거기 100권 정도가 꽂혀 있었다. 회사 입사하고 중간에 한 차례 집에 가져갔고 그 이후 또 쌓인 것이다. 어쨌든 회사에서 자리 이동이 있을 때마다 이 책들을 낑낑대며 옮겼는데 이번에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집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옮겨 놓은 책들은 노끈에 묶인 채 정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또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주말, 정리라고 하면 뭐하고 그냥 책꽂이에 쑤셔 박았다. 더 이상 꽂을 데가 없어 보여서 책장을 또 사야 하나 했는데, 어찌 됐건 이번 책까지는 꾸역꾸역 들어갔다. 그러다가 잊고 있던 이 책을 찾았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작년에 흐름출판 편집자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었다. 당시 이 책이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개되어 나도 관심을 갖고 있던 차였다. 사놓고도 안 읽은 책이 많았다.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선물 받은 거니 더더욱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날은 왠지 이 책을 빼놓고 싶었다. 책을 정리하고(쑤셔 박고) 이 책만 빼서 거실로 나왔다. 별다른 생각 없이 읽어보자 싶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서른여섯의 한 젊은 의사가 암에 걸려 2년여 시간을 투병하다 짧은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라고만 하기엔 설명이 턱 없이 부족한 책이다. 일단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 에세이긴 하지만 의학과 관련된 내용이라 다소 딱딱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한 기우였다. 저자가 의사 이전에 문학도였다는 걸 감안하면 술술 잘 읽히는 건 당연한 결과다. 가독성이 높다고 문장들이 쉽기만 한 건 또 아니다. 실제로 나는 무수히 많은 부분에 밑줄을 그었는데 그만큼 문장력이 탁월하다.
“쌓이고 쌓인 경험들이 삶의 세부사항들에 의해 마모되어버리는. 바로 이런 순간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현명해지는 순간이다.”
“메스는 아주 날카로워서 피부를 자른다기보다는 지퍼를 여는 느낌이 든다.”
“둥지에서 너무 빨리 떨어진 조그만 새들 같았다. 반투명한 피부 사이로 뼈가 보이는 태아들은 아기라기보다는 아기의 밑그림처럼 보였다.”
조산한 아이의 여린 모습을 ‘밑그림’ 같다고 표현하다니. 이런 건 정말 꾹꾹 필사해 놓고 나만 보고 싶기도 했다. 그전에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할까라는 한숨부터…
책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폴의 어릴 때부터 의사로 활동하는 시기의 건강했던 삶에 대해 2부는 자연스럽게 암에 걸린 뒤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책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 폴을 대신해 그의 아내 루시가 책을 정리하며 에필로그를 덤덤히 썼다.
지하철에서 사무실에서 집에서 짬짬이 읽으며 수 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편으로 나는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이 조금 많아졌다고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요즘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살았던 건가, 나의 어떤 건강함이 짜증을 허락했나 싶었다. 삶과 죽음은 동일선상에 있다는 말이 그 어떤 때보다 잘 이해되었다. 암 같은 무서운 병이 사람을 골라서 오는 것도 아니고 당장 나나 나의 가족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무섭다가 병에 걸리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 다른 건 몰라도 힘들어 죽겠다, 라는 말만은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책을 읽었다. 너무 단숨에 읽어버려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빨리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게 되었지만 그 먹먹한 여운과 용기 있고 행복한 삶의 마무리는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숨결이바람될때 #폴칼라니티 #흐름출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