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퇴근 후 합정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릴 때마다 보이는 광고판이 있다. 싱그러운 나뭇잎 배경에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 셋이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고 있다. 그 아래 보이는 카피,
“우리는 학교에서 함께 해 본 것이 너무 많다”
서울시 교육청 공익광고 중 하나로,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과 공부 이외에 아이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배운 중요한 사회적 미래적 가치를 상기시켜보고자 만들었단다. 성적이나 경쟁력보다 협력적 인성이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만들어 갈 것이라고. (출처 참고: 서울특별시 교육청 블로그)
어제 있던 글쓰기 모임의 주제는 ‘공간’이었다. 함께 읽은 책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중 ‘입동’을 골랐는데, 이 단편이 꽤 슬퍼서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라기보다 다들 너무 슬펐다는 감상평이 많아 살짝 민망하기도 했다. 한 멤버는 이런 내용의 소설인 줄 알았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현실도 버거운데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힘들게 사는 이야기를 접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소설의 큰 줄거리는 차치하고 ‘입동’은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기에 고를 수밖에 없었다. 어렵사리 대출을 받아 생애 처음으로 집을 장만한 젊은 부부가 그 집을 꾸며 나가는 과정에서 마치 거울 속 나를 비춰보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읽어 온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나눈 뒤에는 각자가 내가 살던 이 공간에 새로 이사 오게 될 누군가를 향해 집에 대한 당부의 메시지를 남기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멤버들이 공간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써낼지 궁금했다.
결혼 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다수의 이사를 경험한 나로서도 집에 대해 할 말은 많다. 나의 첫 신혼집은 주상복합 오피스텔 원룸이었고 1년 뒤 이사한 곳은 방이 3개에 앞뒤 베란다가 시원하게 트인 23평 아파트. 그리고 전세자금을 줄여서 이사해야 했던 다세대 주택 2층과 현재 아이와 살고 있는, 도심에서 좀 떨어진 외곽의 신축빌라까지 7년 동안 3곳을 거치고 무리해 대출받아 현재 집에 정착 중이다. 전셋집에 살면 2년이 참 빨리 간다. (1년은 말할 것도 없다. 살림들이 이제 좀 자리를 잡은 것 같다, 할 때 다음 집을 알아봐야 한다)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지만 과도하게 집을 샀던 것도 이사 다니는 게 지겨워서였다. 형편이 닿는다면 전세 자금을 올려주면 되겠지만 매년 80% 이상이 인상되는 금액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사실 지금도 내 집이라곤 하지만 은행에 매달 월세를 내며 사는 거나 다를 게 없다.
집 외에도 공간 자체에 대해 할 말은 많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있던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결혼 전 연애를 할 때를 떠올려 보면 데이트 코스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보니 과거 애인과 갔던 곳을 현재 애인과 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가급적 다른 곳으로 장소를 변경하는 쪽이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 사람과 어떤 이유로 헤어졌건 간에) 자연스럽게 지난 사람이 떠올라 그립다기보단 괴로운 때가 많았으니까. 그리움이 괴로움이 되는 순간. 어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썼던 한 멤버는 그럴 경우 자신은 더 많은 사람과 같은 공간에 간다고 했다. 한 사람이 떠오르는 게 아닌 이 사람 저 사람 생각나는 게 오히려 낫다는 것. 그렇다 보면 추억도 자연스레 뭉개지고 옅어질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맞장구쳤다. 유일한 것을 없애 버리는 것도 과거를 지우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특정 장소에서 함께 해본 게 너무 많은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쉽지 않다. 헤어지지 않고 함께한 순간을 계속 추억하며 살아간다면 좋겠지만 우린 늘 헤어지기 마련. 나 또한 아무리 애써도 깨끗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내 기억 어딘가에 계속 남아 있는 A와 헤어진 후 한동안은 신촌, 홍대, 이대 근처에 가는 게 죽을 만큼 힘들었다. 우린 주로 그 세 지역에서 데이트를 했는데 3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A와 함께 했던 장소를 빼버리면 갈 데가 별로 없었다. 사람을 잊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을 잊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 우리는 그렇게 더 나은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장소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덮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간을 이야기하기로 했지만 하나 같이 사람에 대해 쓰고 있던 우리는 어딘가에서 함께 한 게 너무 많은 사람을 잘 잊지 못한다. 당연하게 들리는 이 언급이 때로는 돈이라도 주고 지워버릴 수 있다면 부탁하고 싶을 만큼 강행하고 싶은 상황이 되기도 한다. 잊을 수 없을 만큼 함께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게 좋지만 이별을 경험한 사람은 그게 얼마나 지우고 싶은 과거가 되는지도 잘 알기에 괜히 지레 겁먹기도 한다. 그렇다고 어찌 좋은 공간에서 행복한 추억 만들기를 막을 수 있을까? 만나고 헤어지는 순리 그대로 살고 받아들이면 그만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