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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l 24. 2019

그림책을 다시 보게 된 계기

29CM 컬처 에세이 연재 03 

무더운 여름, 바닷가에 다녀온 손자는 엄마와 함께 할머니 집에 들른다. 거동이 쉽지 않아 바닷가로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할머니께 손자는 주먹만 한 ‘소라’를 선물한다. 잠시 후 손자가 돌아가고 아이가 놓고 간 소라 속으로 할머니가 키우는 강아지가 쏙 들어갔다 나온다. 곧이어 할머니는 꽃무늬 수영복과 수박 반쪽을 챙겨 소라 속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할머니의 여름휴가> 중 일부다. 그림책의 제목과 표지는 한동안 인터넷 서점에서 자주 볼 수 있어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주 날을 잡고 한남동에 위치한 ‘스틸로(stillo)’에 다녀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표지만 알고 있던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펼쳤다. 그림책이니 읽었다 보단 보았다가 더 낫겠다. 귀엽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할머니의 포동포동한 수영복 몸매가 예사롭지 않더니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푹 빠져 읽었다. 읽으면서 홀로 계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맥락. 할머니가 소라를 통과해 해변으로 여름휴가를 떠났다는 그림책 이야기와 조금 먼 얘기일지 몰라도, 두 어머니를 조금 더 자주 찾아봬야겠단 다짐도 덤으로 한참이었다. 


곳곳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목소리가 들리고 ‘조용히’가 무엇(?)이라는 듯 아이들은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해도 시끄럽지 않은 게 신기한 공간. (지금 생각해 보니 활자만 있는 책이 아닌 그림책들이니 완전한 집중을 필요로 했던 게 아닌 것 같다) 아이 없이 나 혼자 그림책을 보는 건 생소하고 낯선 경험이었다. 책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5살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준 건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없기에(사실 내 책 읽는 게 급해서) 읽어달라고 하면 읽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굳이 책을 펼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림책이 내가 읽는 소설이나 에세이만큼 매력 있게 다가왔다면 나서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림책은, 동화책은 아이들만 보는 책이고 아이에게 읽어주는 그 시간조차 나에겐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이 없이 나 혼자 그림책을 보는 건
생소하고 낯선 경험이었다


사운즈 한남 지하 1층에 있는 스틸로에는 그림책 전문 큐레이터가 선정한 2,500여권의 그림책이 테마 별로 나뉘어있다. 일반 서점에서 아이의 성별이나 연령대로 구분 지어 책을 소개한 반면 이곳은 언어, 인물, 문화, 등으로 컨셉을 분류해 보여준다. 나의 관심을 끌었던 ‘언어’ 코너에서 <단어 수집가>라는 그림책을 집었다. 글자를 수집하는 아이의 이야기에서 당장이라도 포스트잇을 사서 눈에 보이는 단어를 적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또 다른 코너에서는 정진호 작가의 <위를 봐요!>라는 책을 뽑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바라보는 시각에서 우리는 소중한 것을 얼마나 놓치고 사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토록 매력적인 그림책이라니. 나는 서둘러 집에 돌아가 아이 방에 무작정 꽂아 놓은 동화책을 하나씩 열어보고 싶어 졌다. 


잔잔하게 음악이 흐르고 군데군데 철퍼덕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의자와 쿠션이 놓인 곳. 인중에 손가락을 세워 조용히 하라고 다그치지 않아도 되는, 마치 키즈카페 같지만(음료도 판매한다)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곳. 스마트폰이나 놀이기구가 아닌 책에 집중하는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곳. 그러나 결코 아이만을 위해 만든 공간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곳. 훗날에는 혼자 찾아가 종일 티켓을 끊고 작가 고유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그림과 마음을 움직이고도 남는 짤막한 글이 담긴 그림책 속에 파묻히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히 드는 곳. 스틸로는 한번 갔다 오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어 지는 장소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지금 내가 구구절절 권하는 것처럼.


*컬처 에세이는 29CM 컬처 캘린더에 매월 연재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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