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시골' 과 '시호와 러스티'
당연하겠지만 아이를 낳은 뒤 아이와 관련된 콘텐츠를 자주 본다.
인스타그램도 예쁜 아기, 세련된 엄마의 깔끔한 살림 솜씨라면 일단은 팔로우를 하고 본다.
애초에 시작이 뭐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창 우리 집 인테리어 때문에 검색을 일삼던 어느 날 얻어걸린 블로그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잘 찍은 사진을 보고 집이 참 깔끔하고 미니멀리즘 하네,라고 생각하고 즐겨찾기를 해두었나 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내가 뭘 즐겨찾기 해놓은지도 까먹을 즈음 다시 즐겨찾기 목록을 하나씩 열어보는데 egtree님의 블로그도 거기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인테리어 때문에 보기 시작했지만 이 집에서 진짜 따라 하고 싶은 건
인테리어가 아닌 육아, 살림이었다. 더 좁혀 말하면 시호와 러스티다.
시호는 블로그 주인장의 세 살배기 딸이고 러스티는 개다.
뜻은 잘 모르겠지만 러스티라는 이름과 너무 잘 어울리는 이 개는 유기견이었다가
시호네와 함께 살게 되었나 보다.
개들한테도 성격이라는 게 있는데 러스티는 천성적으로 '착한 개'라고
동물병원 원장이 말했단다. 그냥 아이와 함께 있는 사진만 봐도 그런 개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호 엄마는 블로그도 하고 인스타그램도 하는데, 그 팔로우 수가 꽤 많다.
따뜻한 사진으로 도배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나도 몰래몰래 구경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 책으로 묶어져 내 손에 쥐어졌다.
처음 출간 소식을 접하곤 이렇게 사랑스러운 콘텐츠를 그냥 둘리 없지,라고 생각했다.
반드시 누군가는 책으로 묶고자 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나도 이렇게 미니멀한 삶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녀의 살림살이를 보면 내 살림은 왜 이렇게 뭐가 많고 복잡한 건지...
사진만 좋았다면 선뜻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마음까진 들지 않았을 것 같다.
사진이야 인스타그램으로 계속 보면 되니까. 책으로 꼭 소장해야겠다는
판단이 선 건 시호 엄마의 글 때문이다. 때로는 너무 솔직해서 이거 내 얘긴데?
하는 것도 종종 있었고 직장 생활 7년만에 아이를 낳은 뒤 회사로 복귀할지 말지를 고민하다
결국 아이 곁에 남기로 한 결정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곧 내 마음과 같아서 말이다.
시호는 지금처럼 예쁘게 자랐으면 좋겠다.
착한 개 러스티는 오래오래 시호네랑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책을 읽고 그 바람이 더 간절해졌다.
'가족의 시골'과는 인연이 좀 있다. 이 집(?)도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정연이네(첫 딸아이 이름이 정연, 둘째 아들 이름이 정우)가 가구를 만들어 판다는 걸 알게 되었고
마침 원룸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놓고 싶은 테이블이 있어 제작이 가능한지 쪽지를 통해 묻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피규어가 제법 있는데 그것들을 테이블에 깔아 놓고
그 위에 유리를 덮는 장식장 같은 테이블을 만들고 싶었던 거다.
그들은 흔쾌히 제작이 가능하다는 오케이 답장을 보냈고
행복한 마음에 믿고 가구 의뢰를 맡긴 게 그들과의 연인의 시작이라면 시작이다.
그렇게 해서 멋진 테이블이 완성되었고 우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테이블이란
뿌듯함에 자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잘 사용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본격적인 시골 살이에 들어간 정연이네를 블로그를 통해 지켜보며
때로는 내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나도 시골 가서 살고 싶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들이 좋아 보였다.
물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 그녀가 써낸 책이 '가족의 시골'이다. 육아휴직 기간 내 이 책을 샀는데,
백일 남짓한 아이를 재워놓고 남편도 자는 밤, 거실 테이블에 스텐드 하나 달랑 켜놓고
이 책을 펼쳤더랬다. 책을 읽으며 몇몇 군데에선 나도 모르게
사무치는 감정에 눈물이 핑 돌곤 했다. 지금 보면 딱히 눈물을 흘릴만한
내용도 아니었는데, 그때 육아가 지지리도 힘들었나 보다.
188p)
2014년 12월 06일
아이들을 보면 에너지가 솟고 복잡한 마음도 간결해진다.
육아는 희생이 아니라 나를 주고, 좀더 성숙한 나를 얻는 것.
그래서 해묵은 나를 주어선 안 되고,
현재의 나를 주어야 했다.
178p)
정우에게
(중략)
나이든 내 모습은 어떨까.
한손에 안을 수 있는 우리 정우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중략)
정우야, 너는 아빠 엄마 인생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네 인생에 우리가 조연으로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마렴.
아기 정우가 이렇게 한번 웃어주고, 편히 잠들고,
나를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한데,
엄마가 지금 너에게 이보다 더 큰 욕심을 부리고 있다면
그건 내 잘못일 거야. 이 편지를 증거로 보여주렴.
마음껏 살아가거라. 언제든 네가 원할 때면,
따뜻한 식탁을 차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너의 백일날, 엄마-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나 동료, 후배가 있으면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이 두 권의 책을 선물할 것이다.
축의금 10만 원보다 몇 배 더 값진 책이고 더 많은 것을 남길 게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