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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Sep 05. 2016

모른다고 말해도 괜찮아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부모는 근검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지난해의 달력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뒷면으로 교과서의 표지를 싸고, 모나미 볼펜 껍데기를 잘라 뭉툭해진 몽당연필 끝에 끼워 쓰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상의 풍경이었다.  <정이현 ‘말하자면 좋은 사람_시티투어버스’를 읽다가>



달력 한 장을 넘기니 ‘9’라는 숫자가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긴다. 여름을 너무 좋아해 아들 이름에도 여름 ‘하’를 넣은 나는 이렇게 계절이 한순간에 바뀔 줄은 몰랐기 때문에 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에도 전혀 즐겁지가 않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도 야속하기만 하다. 어느덧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한 지 15년이 되었다. 사회생활 15년이 그리 긴 시간이라고 할 순 없으나 그중에서 정말 정말 싫었던 출근은 대부분 내가 그 일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였다. 어쩌면 그래, 당연하다.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선 기가 죽기 마련이고 그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면 안 되는 상황일수록 더 그렇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엄마 지인의 추천으로 한국마사회, 즉 경마장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경마장 주말 알바는 대학생들에게 꿀알바였다. 주말만 나가도 급여가 꽤 높아 아는 사람의 추천 없이는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에 나오는 선물이 또 대박이었는데 웬만한 가전제품은 총출동하여 알바들에게는 꿈도 못 꿀 명절 선물들이 직원과 공평하게 주어졌다. 내가 맡은 일은 마권을 파는 일이었는데 유니폼을 입고 은행 창구처럼 생긴 곳에 들어가 마권 기계를 이용해 돈을 받고 마권을 뽑아주면 되는 일이었다. 마권기계에 고객들이 건넨 오엠알 카드를 넣고 금액을 확인한 뒤 거스름돈과 마권을 뽑아주는 등 단순하다면 단순한 일이지만 수천만 원을 넘나드는 돈을 다루는 일이기도 해 알바 초반에는 경력이 좀 있는 담당 사수가 한 명씩 붙고 그 사수 곁에서 하나부터 열까지를 배우게 된다.


돈과 바꾼 대학 MT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단 한 번도 MT를 가본 적이 없다. MT는 보통 금, 토로 가기 때문인데 나는 알바를 가야 했고 그 알바가 하필 주말이 전부여서 어쩔 수 없이 학교 MT는 포기해야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취업이 치열하지 않아 ‘놀고먹자 대학생’이라는 말이 흔할 정도로 주중에는 거의 농땡이를 치거나 술을 마셨는데 그렇게 술 먹고 놀다가 주말에 아침 일찍 일어나 아르바이트를 가야 하는 내 처지가 나는 너무 서글펐다. 나도 주말에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싶었고 늦잠도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루라도 빠지면 받는 급여 차가 심하기도 했고 페널티가 있어 자주 빠질 수도 없었다. 학비까진 아니지만 용돈을 내가 벌어서 써야 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초반에 나의 사수였던 선배가 워낙 무서운 사람이라 나는 더욱더 출근하기가 싫었다. 토요일 아침 눈을 뜨면 나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 딱 그런 기분이었다. 1년 정도 지나서는 눈 감고도 기계를 다룰 수 있을 만큼 일에 능숙해져 거의 놀러 가는 것마냥 경마장 알바 가는 게 즐거웠지만 말이다.


또 다른 지옥 같은 출근길은 몇 년 전 약 1년간 다녔던 디자인 에이전시다. 각오하고 들어가긴 했으나 그전에 하던 업무 양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았고 이 또한 일에 능숙하지 못하다 보니 차장한테 맨날 면박받고 과장한테 감각 없다고 무시당하고… 그땐 내가 축구공인 줄 알았다, 맨날 까여서. 내가 왜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와 이 개고생을 하고 있을까! 매일 아침 내가 만든 이 상황에 울며 겨자 먹기로 출근했다. 그때도 그랬다. 같은 디자인이지만 에이전시 업무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내가 모르는 스킬도 많았는데 직급도 사원도 아닌 대리로 들어갔으니 모른다고도 못하고, 어떻게든 근무시간에는 해보겠다고 어물쩡 넘어가 놓고 야근하면서 검색의 검색을 거치고 책도 찾아보고 친구한테 물어도 보면서 그 수많은 포토샵, 일러스트 스킬들과 인쇄 관련 용어 및 절차 등을 터득해야 했다.


illust by 윤지민


모른다고 하는 게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나는 뭐 다 알아야 되나? 물론 모른다고 하면 아니, 대리가 이것도 몰라? 전에 회사에선 뭘 배웠어, 라며 엄청 면박을 줬겠지만 그렇게 쪽팔리고 그냥 차창이나, 과장한테 배우면 그만이었을 텐데. 어찌 됐든 일을 해야 되는데 모르면 가르쳐주지 않았겠나. 뭐 다 지난 일이다. 나는 끝끝내 모른다고 하지 않고 그냥 관뒀다. 돌이켜 보면 나는 모른다고 말해야 하는 내가 싫었다.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던 거다, 모르는 주제에. 나중에는 어느정도 다룰 줄 아는 업무 스킬이 되긴 했으나 그래도 모르는 건 끊임없이 속출했고(하루하루가 미션 수행하러 출근하는 기분이었다.) 알아야 하는 게 너무 많아서 그냥 나왔다. 그 에이전시에서 마지막 출근 날 까지도 야근했던 기억이 난다.(마지막 출근하는 직원을 야근시키고 모두 퇴근할 때 나는 내가 그곳을 나가야 하는 이유가 더 확고해졌다.) 건물의 모든 조명을 끄고 현관문을 닫고 나와 아무도 없는 어두워진 골목길에서 발을 힘껏 구르며 야! 끝났다!! 하고 소리 질렀던 게 생각난다. 너무 행복했다, 그곳에 다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도 돼

뭐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능숙해지기 마련인데 그 능숙해지기까지의 시간을 버티는 게 너무 힘들다. 그리고 더 견딜 수 없는 건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안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건 일을 떠나서 그 회사의 사소한 규칙 같은 것에서도 말이다. 모른다는 게 사람을 참 기 죽인다. 혹자들은 하나씩 알아 가는 재미와 즐거움을 만끽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글쎄, 과연 그 과정이 즐겁기만 할까? 누군가 그랬다, 사회생활이 재미있고 즐거우면 돈을 줘야지 왜 돈을 받겠냐고. 난 그저 그 시간이 빨리빨리 지나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나만 모르는 야근은 새벽이 넘어가도 끝날 줄을 몰랐다.


나이가 좀 드니까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게 조금은 쉬워졌다. 왤까? 그게 더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니냐고? 아니,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해도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또 어느 정도 무감각해지기도 했다. 남들이 내가 이걸 모른다고 뒤에서 뭐라 하든 말든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그들 문제다. 한편으론 이렇게 연륜이 쌓고 이렇게 사회인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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