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하면 역시 산 아이가
부산은 도시 명에 산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산이 많다. 그렇다고 강원도만큼 국립공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만. 10월 초, 러닝을 하다 더 다리를 움직이고 싶어 등산을 가고 싶어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나이키 트레일화를 신고 처음으로 황령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산악인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여러모로 산은 복잡하다. 길을 일컫는 게 아니다. 깨끗함에도 쓰레기가 가끔 있기도 하며 여러 모순적인 점들이 복잡핟. 그럼에도 한 가지 진리는 산은 피톤치드를 내뱉는다. 심신의 안정에 좋다. 그리고 생각의 원동력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난 운동할 때, 생각이 안 들어서 좋던데." 난 아니다. 물론 웨이트를 올리면서 쇠질을 하면 다르지만, 적어도 등산에서는 그렇지 않다. 내가 등산을 시작한 10월 달, 난 내가 왜 살아가는 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졌다. 그건 카뮈에서부터 시작되어 케루악으로부터 이어진 질의응답이었다.
[내가 왜 삶에 열망을 추구해야 하는가?] 그게 질문이었다. 난 매번 대답을 다르게 냈다. 산의 능선이 늘 올바르지는 않고 균등하지 않듯.
- 이유는 없다.
-우리는 잉태되었고, 그렇기에 잘 살아간다는 욕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움직임은 본성이다
등등... 그리고 그 고민은, 날 다른 고민으로 길을 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