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 한 통에 담긴 정성

물속 인사, 땅 위의 선물

by 맛있는 하루

"아고, 나 때문에 멈추게 해서 미안해. 내가 뭘 좀 가지고 왔어."


자유형 여덟 바퀴를 돌고 사이드턴을 하려던 찰나였다. 수경 안으로 옆 레인에서 걷던 어르신이 보인다. 무릎을 구부려 벽을 발로 차고 돌아 나가려다 멈춰 선다.


"실은 크리스마스 때 주려고 했는데, 이제서야 주는 거야. 별건 아닌데 내가 직접 만든 거야. 약식이랑 수세미. 이따가 씻고 나갈 때, 신발장 옆 TV 앞쪽 테이블 위에 올려뒀으니 꼭 가져가."


웃으시며 약식과 수세미 선물 이야기를 하신다.


"봉투에 3개씩 들어있어. 근데 그게 다 우리 이쁜이 꺼는 아니고, 한 개만 가져가. 두 개는 다른 사람 꺼야. 다는 아니라서 미안해."


"힘들게 만드신 건데 저 주셔도 돼요? 저 약식 좋아해요. 직접 만드신 약식이 진짜 맛있고 귀한 건데요. 너무 감사해요."


"아니야. 조그마해. 안 커. 얼려 놓은 거니까, 집에 가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


"저 요리는 못해도 전자레인지는 정말 잘 사용해요. 감사합니다."


"이제, 얼른 다시 수영해. 어여해. 어여. 별거 아닌 걸로 내가 수영 방해했어."


다시 자유형 뺑뺑이를 시작한다.




이른 아침, 출근 직전인 남자 회원들이 대부분인 수영 레인. 서너 명밖에 안 되는 여성 회원이라는 동질감.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 도장 찍으며 우리는 그렇게 수영 친구가 됐다.


"왔어?"


"네~. 오늘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 오셨어요?"


"응. 이뻐. 이뻐. 이렇게 늙은이한테 아는 척해줘서 고마워."


"저희 친구잖아요. 수영장 친구. 친구끼리 무슨 그런 말씀을요."


"호호호. 좋다. 좋아. 요즘 사람들은 인사도 잘 안 하는데, 이쁘고 젊은 사람한테 친구라는 말을 들으니 너무 고마워."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인사다.


특히나 아파트 같은 라인의 어른들에게는 필수다. 눈이 마주쳤는데 눈동자에 흔들림도 없이 빳빳하게 고개를 돌리는 것. 다른 집 아이들은 그럴 수 있어도, 우리 집 아이들은 그러면 안 된다. 예절의 기본이자, 일상에서 지켜야 할 예의라고 생각한다.


어른을 보면 반드시 먼저 인사하라고 잔소리를 해봐야 소용없다. 그냥 나부터 하는 것. 목례, 눈인사, 미소 지으며 눈 마주치기, '안녕하세요' 말하며 인사하기. 내가 먼저 인사 건넨 뒤, 아이를 쳐다보면 아이도 따라 인사를 했다.


"아이가 참 인사성이 바르더라고요."


이웃분들이 내게 말씀하시기도 하고 아이에게 직접 칭찬을 해주시기도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칭찬을 듣고 자란 아이들은 사춘기에도 인사를 잘했다. 집에서 엄마, 아빠와 다투고 나간 날에도, 이웃을 마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ChatGPT Image 2026년 1월 11일 오전 10_33_26.png AI 생성 이미지 활용

매일 만나서 인사를 했을 뿐인데.


수영을 하다가 안부를 주고받으며 나이를 넘어서 친구가 됐을 뿐인데. 정성을 들여 손수 만든 약식과 수세미를 선물로 받았다. 땅 위에서는 걷기도 힘들고 눈도 침침한 팔십 대 어르신의 수고와 정성. 감히 무엇으로 감사 인사를 되돌려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자유형 스무 바퀴를 채우고, 배영을 시작한다.


구정에는 내가 깜짝선물을 드려야지. 무엇을 드려야 실용적이고 부담도 안 되시고 기분도 좋으실까.

배영 열 바퀴를 마칠 때까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구정이 오기 전까지 선물 후보 목록을 작성해봐야겠다.


숙제가 생겼다. 기분 좋은 숙제.


소독 냄새 가득한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며 생각한다. 선물의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마음이 아닐까. 손수 뜨개질한 수세미,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인 약식과 같은 온기를 드리고 싶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 차가운 물속에서 시작된 인사가 땅 위의 일상까지 온기를 주었다. 매일 아침 수영장을 향하는 기분 좋은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배영 마지막 바퀴를 돌며 미소 짓는다.


오늘도 수영장은 내게 가르쳐준다. 진심 어린 인사 하나가 어떻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지. 나이도, 세대도 넘어서는 연결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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