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들어가는 백 가지 방법

수영장 입수, 그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일상

by 맛있는 하루

타일 바닥에 남은 물기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바닥, 특히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준다. 물기 없는 바닥으로 방향을 틀려고 눈빛은 매섭게 쏘아보지만, 내 모습은 분명 설렘 가득한 종종걸음이다.


샤워실에서 수영장 가는 통로는 시베리아다. 추위와의 전쟁에서 져서 수영장을 결석하는 일이 없도록 수건을 어깨에 두르고 종종종.


"이야~! 오늘도 1인 1레인 할 수 있겠구나!"


수건을 간이의자에 걸어놓고 레인 끝에 걸터앉는다. 발가락으로 살살 물맛을 본 뒤, 손으로 레인 벽을 잡고 엉덩이를 돌려 살포시 입수한다. 물에 들어가면 벽을 바라보는 상태다.


엉덩이 부분을 벽에 대고 들어가면, 엉덩이가 벽에 쓸린다. 사소한 것 같지만, 별것 아닌 게 아니다. 딱 그 부분의 수영복 마모가 더 빨리 온다. 수영복이 3~4개월마다 닳고 늘어나서 분기에 한 벌씩 교체해야 하는 입장에서, 수영복 마모는 민감한 주제다.


나의 수영장 입수 타입은 '사뿐조용형'이다. 그 누구도 나의 입수 사실을 모르게 하라는 듯 조용하다. 특히나 겨울에는 차가운 수영장 물에 근육이 놀라서 더 굳어버리면 안 되니, 허리가 또 삐끗하지 않도록 '퇴행성 변형 디스크 보유자'는 더더욱 조용히 입수한다.


수영장 입수 풍경은 다양하다.




A. 강사형 회원님

(이분에 대해서는 또 한 편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강사는 아니지만, 모든 분들의 영법에 훈수를 두시니 강사형 회원이라고 칭한다.)


등장부터 시끌벅적하다.

"어~~~! 안녕하세요?"


시선이 닿은 분들에게는 크게 인사한다. 눈이 안 마주친 분들과는 억지로라도 눈을 맞추려 애를 쓴다. 본인의 등장을 온 세상에 알리는 타입이다. 입수 타이밍을 기다린다. 레인과 그 옆 레인 끝이 비어야 한다. 다른 분들이 반대편으로 헤엄쳐갈 때, 그는 무릎을 굽힌다. 그리고 다이빙. 물속으로 화려하게 진입한다.


등장 인사와 스타트로 본인의 출석을 화려하게 알리며 입수한다. 일명 '시끌벅적형'.




B. 장비빨 회원님

얼마 전, 골전도 이어폰과 애플워치를 장만하신 회원님. 수영 출발 전후, 워치로 기록을 살피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선곡하느라 레인 끝에서 항상 공사다망하시다.


나와 같이 엉덩이를 돌려 입수한 뒤, 이어폰으로 음악을 선곡한다. 물속 스트레칭을 하고 애플워치의 수영 모드를 켠다. 장비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장비와 함께 물속에서 '물아일체형'이다.


"장비를 갖추는 순간, 아마추어는 프로가 된다."
_ 어느 수영 마니아의 명언


ChatGPT Image 2026년 1월 7일 오후 03_21_39.png AI 생성 이미지 활용


C. 깔맞춤 회원님

자유수영 위주의 수영장이어서 연세 드신 분들이 많다. 레인 하나는 걷기 전용이다. 화려한 수영복은 거의 없다. 내 또래 여성 회원들의 수영복에나 색깔이 있을 뿐, 남성 회원들은 모두 검은색 일색이다. 가끔 블루 계열이 보일 뿐.


그런 수영장에서 돋보이는 남성 회원이 한 분 있다. 항상 수모와 수영복은 깔맞춤이다. 일단 초미니 삼각수영복을 착용했다. 삼각 수영복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초미니(?) 삼각 수영복을 입은 분이 only the one이어서 더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그리고 색감은 항상 형광색이다. 형광 분홍, 형광 노랑, 형광 하늘, 형광 연두, 형광 블루. 매일 수영복이 바뀐다. 수영복을 돌려 가며 입는 게 수영복 수명 연장에 좋으니 그저 부럽기만 하다.


등장부터 눈에 띄는 그분 역시 다이빙 스타트로 입수한다. 강사형 회원님과 차이가 있다면, 화려한 깔맞춤 형광 수영복으로 조용히 시선을 받고 화려하게 스타트로 입수하는 것이다. '조용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형'.




D. 걷기 어르신분들

4개 레인 중 하나는 걷기 전용이다. 회원은 많지 않지만 걷는 분들의 비중이 높다. 연세 높으신 분들이 많다는 뜻이다. 추운 겨울에도 수영장을 찾는 어르신들. 땅 위 걷기는 허리, 무릎, 발목에 무리가 가니 물속 걷기로 버텨내는 분들이다.


수영장 통로 추위에 감기 드실까, 어깨에 수건을 두르고 아장아장, 절뚝절뚝 수영장을 향해 걸어오신다. 수건을 간이 의자에 걸쳐두고 수영장 사다리로 향한다. 사다리 앞에서 뒷걸음으로 물속을 내려가는 방향으로 몸을 천천히 돌린다. 하나, 두울, 세엣. 천천히. 한 발자국씩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다. 물속으로 입수 후, 몸의 균형을 잡고 손을 흔드신다.


"호호호, 왔어~~?" "응, 왔어." "오늘도 살아있네?" "응, 살아있다!"


물속 걷기를 통해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수영장 사다리 의존형'.




입수 방법이 제각각이듯, 퇴수 방법도 저마다 다르다.


강사형 회원님은 마지막 레인을 헤엄쳐 온 뒤 레인 끝에서 두 팔을 벌려 기지개를 켠다. "아~~ 오늘도 시원했다!" 온 수영장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함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물 밖에서도 여러 사람과 눈 맞추며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를 건넨다.


장비빨 회원님은 레인 벽에 기대어 애플워치를 꼼꼼히 살핀다. 오늘의 거리, 스트로크 수, 페이스. 데이터를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물에서 나온다. 이어폰을 빼고, 워치를 닦고, 장비들을 정돈하느라 또 한참이다.


깔맞춤 회원님은 형광색 수영복이 눈에 띄니 퇴수도 눈에 띈다. 마지막 레인을 마치고 레인 끝에 걸터앉아 잠시 호흡을 정돈한다. 그리고는 조용히 사다리로 올라간다. 화려한 색감과 달리 퇴수는 담백하다.


걷기 어르신들은 사다리를 붙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온다. "오늘은 무릎이 좀 나은 것 같네." "그래? 다행이다, 다행이야."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내일 또 보자는 인사를 나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수영장을 떠난다.




사뿐조용형인 나는 어떻게 나갈까. 마지막 레인을 마친 뒤 사다리를 붙잡고 잠시 숨을 고른다. 사다리를 잡고 골반과 다리 스트레칭을 한 뒤 조용히 물 밖으로 나온다. 입수할 때처럼. 물속에서의 시간을 천천히 정리하며.


나는 내일도 엉덩이를 돌려, 사뿐조용하게 입수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퇴수할 것이다.


수영장 세상에 조용히, 그리고 사뿐히 스며들었다가 또 그렇게 빠져나와야지. 물결 하나 크게 일으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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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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