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로션 발라주는 사이

365일, 물속에서 시작된 친밀함

by 맛있는 하루

수영 후 샤워를 하고 나와 바디로션을 바른다. 아무리 팔을 뻗고 길게 늘려도 양쪽 날개죽지 아래에는 손이 닿지 않는다. 간지러움에 어젯밤엔 자다 말고 깼다. 효자손으로 날개죽지를 벅벅 긁다가 상처까지 냈다.


'아, 가제트 팔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려운 곳도 살살 긁어주고 바디로션도 구석구석 발라줄 수 있을 텐데.'




그때였다. 차갑고도 촉촉한 바디로션이 가려운 날개죽지 아래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느낌.


"이리 와 봐. 여기 팔 안 닿지? 언니가 발라줄게. 2025년의 마지막 날, 서비스입니다! 어깨 마사지도 들어가요!"


올 한해 같은 시간에 자유수영을 하며 통성명까지 한 언니다. 물론 나보다 열 살은 훨씬 넘게 차이 나는 언니 오브 더 언니다.


"아고, 제가 먼저 발라드릴게요."


"아니야. 내 손에 로션 남아있어. 얼른 등 대봐."




나는 최강 I형, 극내향형이고 극소심형이다. 최소 열 번 정도는 밥을 같이 먹어야 친해진다. 이제는 누군가와 밥을 두세 번도 먹을 일도 없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가 어렵다. 땅 위에서 옷을 입고서도 통성명이 힘든데, 수영장에서의 낯가림은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수영 후 반신욕을 하다 얼굴을 익혔다. 허리 컨디션이 안 좋아 걸음걸이가 이상했던 날이었다.


"허리 안 좋아요? 걸음걸이가 좀 불편해보여죠."


"아, 네. 요즘 허리가 안 좋아서요."


"수영장 근처에 ○○○한의원 있는데, 거기 원장님이 허리 정말 잘 봐요."


그렇게 병원 얘기를 하다, 통성명을 했다.




그 뒤로 그 언니를 매일 만나게 되었다. 수영장에서, 반신욕 탕 안에서. 작은 천 조각의 수영복을 입고서, 아니 옷을 홀딱 벗고 만나다 보니 친밀도가 쑥쑥 올라갔다. 열 번 이상 밥을 먹은 것처럼.


어느새 언니는 내 등에 바디로션을 발라주고 있었고, 나도 언니의 등에 로션을 정성껏 발라주게 되었다.


ChatGPT Image 2025년 12월 31일 오후 12_38_05.png AI 생성 이미지 사용

2025년 수영 기록을 살펴봤다.


1월: 25일

2월: 26일

3월: 29일

4월: 28일

5월: 30일

6월: 28일

7월: 29일

8월: 30일

9월: 23일 (수영장 공사 기간 제외)

10월: 26일

11월: 28일

12월: 27일 (여행 기간 제외)


수영장 휴관일을 제외하고 여행기간에만 결석했다. (휴관일: 매월 둘째, 넷째 주 일요일 & 신정, 설날, 추석 연휴)


와, 진짜 열심히 수영했구나.


숨 쉬기만이 운동으로 알고 살았던 내게 수영이 이렇게 일상 속으로 들어오다니. 일 년 동안 빠지지 않고 알몸을 드러내며 인사했으니, 누군가가 최강 I형인 나의 등에 바디로션을 발라주어도 웃으며 인사하고, 또 누군가의 등에 정성껏 로션을 발라주는 관계가 탄생했겠지.




작가 앤 모로우 린드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관계란 살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한다." _『바다의 선물』


물속에서 보낸 329일. 그 시간은 단순히 몸을 움직인 것 이상이었다. 날개죽지에 닿지 않던 손이 누군가의 손으로 이어지고, 낯선 이가 언니가 되고, 극내향형이 바디로션을 발라주는 사이가 되었다.


2025년이 저물어간다. 물속에서 시작된 친밀함이 물 밖으로 번져나간다. 수영복 한 장 사이에서 시작된 용기가, 어느새 서로의 등을 기꺼이 내어주는 관계로 자라났다.


내년에도 수영장에 간다. 물은 나를 받아주고, 누군가는 내 등을 발라준다. 바디로션 한 펌프, 그 작은 친절 속에서 일상은 계속 흐른다.



P.S.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일상에도 작은 친절이 가득하기를. 물속에서도, 물 밖에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수영일기 #수영에세이 #수영장일상 #내향형의용기 #2025결산 #수영기록

keyword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