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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최고다

원정 수영의 설렘과 좌절, 그리고 깨달음

by 맛있는 하루
"여행지의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_ 빌 브라이슨, 『나를 부르는 숲』


그랬다. 원정 수영을 앞두고 나는 정말 두근거렸다. 낯선 도시, 낯선 수영장. 그곳의 물은 어떤 색일까, 천장은 얼마나 높을까, 물살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수영장은, 실망 그 자체였다.




첫 번째 문제는 수심이었다.

골반선 약간 위로 올라오는 애매한 깊이. 일반적인 수영장의 수심에 익숙한 몸이 어색했다. 유선형을 만들어 소금쟁이처럼 물 위를 미끄러지고 싶어도 물 위에 있는 것 같지 않은 느낌. 어딘가 모르게 답답했다.


두 번째는 온도.

물이 너무 따뜻했다. 수영장이 아니라 온천에 온 것 같았다. 한 바퀴만 돌아도 숨이 찼다. 헉헉헉. 수영을 하면 할수록 몸이 개운한 게 아니라 지쳤다. 이건 수영이 아니라 반신욕탕에서 풍덩풍덩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레인이 없다는 것.

사람들이 사방에서 자유롭게 헤엄쳤다. 아니, 헤엄친다기보다 물장난에 가까웠다. 누군가와 부딪힐까 봐 조심조심 팔을 저었다. 제대로 된 영법은 꿈도 못 꿨다. 자유형을 하다가도 머리를 들어 앞뒤옆의 공간을 확인해야 했다. 속도를 낼 수도, 리듬을 탈 수도 없었다.


이미지 출처: pexels.com


"집만 한 곳이 없다."


여행 첫날 밤, 나는 그 말을 실감했다. 낯선 침대, 맞지 않는 베개, 더운 공기를 뿜어내는 난방 때문에 공기는 건조하고 이불 속은 추웠다. 뒤척이다 뒤척이다 결국 두 시간쯤 눈을 붙였을까. 다음 날 아침, 거울 속 내 얼굴은 푹 꺼져 있었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로 다시 새벽 수영에 도전했지만, 역시나였다. 오픈런한 수영장에는 따끈뜨끈한 수증기가 모락모락 나오고 있었다. 한 바퀴, 두 바퀴. 헉헉헉.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수영'뿐 아니라 '내 수영장'이었다는 것을.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아름다운 제주를 누리면서도 두고 온 스위트홈과 수영장이 계속 생각났다.


전기장판을 최대로 올리고 이불 속에 파고들 생각. 익숙한 베개에 얼굴을 묻을 생각.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평소 다니던 그 수영장에 가서 시원한 물살을 가를 생각.


레인이 있는 곳. 수심이 충분한 곳. 물 온도가 딱 맞는 곳. 내가 마음껏 팔을 뻗고 다리를 차며 속도를 낼 수 있는 곳.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전기장판을 켰다.

그리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며 중얼거렸다.


"역시 집이 최고야."


집순이에게 최고의 수영장은, 결국 우리 동네 수영장이었다. 익숙한 것들이 주는 안정감. 낯선 설렘보다 더 소중한 건, 매일 만나는 그 평범한 일상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가방을 챙겨 수영장으로 향했다. 물에 들어가는 순간, 차갑고 선명한 감촉이 온몸을 감쌌다.


아, 이거지.


"며칠 동안 왜 안 보였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보고 싶었어!"


며칠 못 뵌 어르신들. 나의 수영장 친구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셨다.


그래, 이게 바로 내 수영장이야. 내 물이고, 내 사람들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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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