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달라진 우리, 같은 수영장에서
나와 남편은 수영을 좋아한다. 나는 자유수영을, 남편은 강습수영을 한다. 물론 서로 다른 수영장에서다. 수영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우리는 다른 레인을, 다른 시간을 산다. 같으면서도 다른 우리.
그런 우리가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숙소 조건은 단 하나. 실내수영장이 있을 것.
서울로 이사 온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이 제주도를 그리워했다. 기말고사 직후 재량휴업일, 1년 동안 고생한 아들을 위한 여행이라는 게 명목상의 이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부부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서로의 수영 실력을 확인하는 것.
"새벽 6시에 갈까?"
"응, 애는 자고 있을 시간이니까."
수영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은어가 있다. 평소 다니던 수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수영하는 것을 '원정 수영'이라 부른다.
"원정 수영이라니, 뭔가 거창한데?"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거창하긴. 그냥 다른 수영장 가는 거지 뭐."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사실 나는 설렌다. 낯선 수영장의 물 깊이는 어떨까. 레인은 몇 개나 될까. 수온은 적당할까.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일은 언제나 작은 모험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썼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고생은 선택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의 새벽 수영은 분명 고생이다. 따뜻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수영장으로 향하는 일. 하지만 이건 내가 선택한 고생이다. 기꺼이 감수하고 싶은.
남편과 나는 같은 물속에 있지만 다른 수영을 한다. 남편은 강사의 지시를 따르며 정확한 자세를 배운다. 나는 혼자 레인을 가르며 생각을 정리한다. 우리는 서로의 영법을 잘 모른다.
김효선 작가는 『오춘실의 사계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영의 아름다운 점은 '시나브로'에 있다. 하루하루의 수련이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내진 못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 틀림없이 아주 사소한 무엇이라도 어제보다는 더 나아져 있다. 물에 제대로 뜨지 못하는 엄마 역시 그렇다. 엄마는 수영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
시나브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나도 그렇게 나아지고 있을까. 1년 반 전 처음 자유수영을 시작했을 때, 25미터를 가는 게 벅찼다. 지금은 1.5킬로미터를 헤엄친다. 어느 순간 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제보다 오늘이, 지난주보다 이번 주가 조금씩 편해졌다는 것만 안다.
제주도 수영장에서는 어떨까.
처음으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물에 들어가는 우리. 남편의 배영은 얼마나 안정적일까. 내 자유형은 그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다. 조금 떨리기도 한다.
여행은 일상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단절이다. 익숙한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장소에서 다른 리듬으로 숨 쉬는 시간.
우리의 제주도는 아들을 위한 여행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위한 원정이기도 하다. 같으면서도 다른 우리가, 낯선 수영장의 새벽 물속에서 만날 것이다.
수영복을 챙기며 생각한다.
여행과 수영 사이 어딘가에, 우리만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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