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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휴관일은 예뻐지는 날

70대 언니가 알려준 월요일의 비밀

by 맛있는 하루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일요일은 수영장 휴관일이다.


열감기라도 걸려 수영을 하루 쉬는 날이면 엄청 찜찜하다. 하루 못 간 수영 등록비만 하루 종일 아깝다. 속이 다 쓰라리다.


수영장 휴관일은 다르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 마음 편히 쉬게 된다. 직장인으로 치자면, 한 달에 두 번은 유급 휴가인 셈이다.


그런데 매일 수영을 가다 휴관일이 되면 하루가 길다. 길어도 너무 길다.




수영 후 반신욕을 하면서 내일 휴관일에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요 앞에 새로 생긴 미용실 가봤어? 거기 뿌리염색이 저렴해. 이 동네 다 오만 원은 하는데, 거기는 삼만 원 받더라고."


"머리 하시게요?"


"응. 난 휴관일이면 예뻐지는 날이야. 파마 하러 가."


칠십 대 젊은 어르신이 귀엽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육십 대 언니가 말한다.


"언니, 언니도 예뻐지는 날이군요? 저는 뿌염하고, 네일하러 가요."


"그으래? 우리 월요일에는 다 예뻐져서 만나겠네?"


"젊은 엄마는 휴관일에 뭐해?"


"전 여태까지 계획이 없었는데, 저도 뿌염하고 예뻐져서 올게요."


이제 나도 수영장 휴관일은 예뻐지는 날로 정했다.




수영장을 나오며, 개인 염색사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 내일은 뿌염하는 날입니다. 예습해주세요.


점점 짧아지는 뿌염 주기가 부담스러워 올해부터 개인 염색사를 고용했다. 바로, 남편이다. 올 1월부터 나에게 고용된 남편은 처음에는 투덜댔다.


- 여자 머리는 안 해봤다고! 고작 내 앞머리, 귀옆머리밖에 안 해봤는데, 여자 머리 뿌염을 해보라는 건 좀 부담스러운데. 얼마 줄 거야?


- 무슨 돈을 줘. 미용실 비용 절약하는 게 돈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


- 헐!


- 자자. 일단 유튜브에서 여자 머리 뿌리염색 찾아봐봐.


그렇게 남편은 나의 개인 염색사로 반강제 스카우트당했다. 여름까지만 해도 염색 스킬에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친절 서비스도 교육받아 제법 친절하고 실력 있는 개인 염색사가 되었다.


pexels-722721370-18341479.jpg 이미지 출처: pexels.com


휴관일 아침, 남편은 염색약을 섞었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앉아봐. 오늘은 빨리 끝낼게."


남편의 손이 능숙하게 내 머리를 섹션별로 나눴다. 한때는 10분마다 "힘들어 죽겠어" 투덜대던 사람이 이제는 묵묵히 염색약을 발라준다.


염색이 끝나고, 거울을 봤다. 흰 눈이 내린 듯했던 머리카락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뭐야, 실력이 늘었네?"


"당연하지. 나 유튜브로 공부 많이 했어."


미용실에서 염색할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산뜻함에 더해 웃음까지 생겼다. 개인 염색사가 투덜대며 염색해주는 모습이 자꾸 떠올라 하루종일 웃음이 났다.




휴관일 다음 날 아침 수영장 물은 더 차갑다.


아직 본격 추위가 온 것도 아닌데 벌써 기모 내복을 입기 시작했다. 작년 한파 때는? 기모 내복 2겹이었다.


추운 것이 싫으면서도, 휴관일 다음 날 아침 수영장의 찬물은 너무 좋다. 뜨거운 물에서 수영하면 숨만 차다. 찬물은 다르다. 슝슝 날아가는 것 같다. 차가운 물이 점점 따뜻해지는 그 기분. 정말이지 청량하다.


탈의실에서 칠십 대 언니와 육십 대 언니를 만났다.


"염색했구나~!"


"언니들도요!"


우리는 서로의 머리를 보며 웃었다. 칠십 대 언니는 파마가 살짝 들어간 머리를, 육십 대 언니는 붉은 기가 도는 염색과 반짝이는 네일을 보여주었다.


"다들 예뻐지셨네요!"


"자기도!"




겨울 수영장 물은 차갑다. 휴관일 다음날 물이 차가운 만큼, 청량감은 더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자꾸만 더 예뻐져서 만난다.


수영장 휴관일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며 생각한다. 다음 휴관일에는 나도 네일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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