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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자수하러 간다

수영장에도 암호가 있다

by 맛있는 하루


"오늘도 늦잠으로 새수를 못갔어요. 대신 퇴근 후 자수하러 가야겠어요."


수영인들의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고 처음 읽은 글이었다.


새수?

아니 오타일까, 아니면 '세수'의 맞춤법을 잘 모르시는 건가. 자수는 또 무슨 말일까.


글에 달린 댓글 또한 외계어다.


"아.. 저도 못갔습니다. 대신 저녁에 즐수하시길요."
"저도 저녁 자수갑니다."
"전 오늘 씻수해서 저수도 가려구요. 2수 목표입니다!"
"전 이제 낮수갑니다. 빡수하겠습니다."


즐수는 대충 즐거운 수영, 빡수는 빡세게 하는 수영인 것 같다.


다른 분야 같으면 니들끼리 놀아라 하고 나왔겠지만, 나는야 수영인 아닌가. 수영인 커뮤니티의 언어는 좀 이해해보고 싶다.


수영 용어에 대해 검색해봤다.




- 새수: 새벽 수영의 줄임말. 보통 오전 6시~8시에 하는 수영

- 아수: 아침수영의 줄임말. 보통 오전 9시~정오에 하는 수영

- 낮수: 낮 수영의 줄임말. 정오 이후 오후 시간에 하는 수영

- 퇴수: 퇴근 후 수영의 줄임말

- 저수: 저녁 수영의 줄임말

- 2수: 하루에 두 번 하는 수영


- 강수: 강습수영의 줄임말

- 자수: 자유수영의 줄임말

- 째수: 수영을 안 나가는 것

- 씻수: 씻으러 가는 수영. 씻는 것을 목적으로 수영은 설렁설렁


- 열수: 열심히 하는 수영

- 빡수: 열수보다 더 열심히, 빡세게 하는 수영

- 즐수: 즐겁게 하는 수영

- 놀수: 놀러 가는 수영. 놀면서 하는 수영

- 행수: 행복하게 하는 수영


- 오수완: '오늘 수영 완료'의 줄인말

- 셩: 수영을 빠르게 줄여 부르는 말

- 셩복: 수영복을 빠르게 줄여 부르는 말

- 물옷: 수영복을 부르는 말 (반대로 밖에서 입는 옷을 육지옷이라 부름)

- 셩장: 수영장을 빠르게 줄여 부르는 말


- 수력: 수영 경력의 줄인말

- 수친: 수영 친구, 같이 수영하는 친구를 부르는 말

- 수친자: 수영에 미친 사람을 부르는 말

- 수태기: '수영'과 '권태기'를 합쳐 부르는 말

- 샤워실 토크: 수영장 샤워실로 이어지는 이야기 화수분

- 스윔푸드: 수영 끝나고 먹는 음식을 부르는 말


- 고인물: 수영장을 오래 다닌 사람을 통칭하는 말

- 젓는다: '수영하다'의 또 다른 표현. 사투리 '저스다'로도 사용

- 다슬기/따개비: 레인 끝에 붙어서 오래 쉬는 사람. 외국에선 불가사리라고 표현하기도 함

- 해파리: 둥둥 떠다니며 천천히 수영하는 사람


(출처: 인스타 @newdoingswim)




사용전_pexels-kindelmedia-8688566.jpg 이미지 출처: pexels.com


와.

나는 오전 수영을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새수를 하고 있던 거였구나.


새수. 즐수. 행수. 빡수. 오수완.

나를 표현하는 암호들이었다.


"물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 중력이 사라진 그곳에서는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

— 린 콕스, 오픈워터 수영 선수


얼른 셩장의 고인물이 되고 싶다. 다슬기나 따개비는 마음에 안 들고, 해파리는 되어보고 싶다. 물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천천히 팔을 젓는 사람.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이.


오늘도 나는 자수하러 간다.


자유롭게, 나만의 속도로, 물을 가르며.


25미터를 왕복하고, 또 왕복한다. 숨을 고르고, 팔을 뻗는다. 킥을 차고, 글라이딩한다. 턴을 하고,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온다.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 오늘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그렇게 오늘도 오수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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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