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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수영장의 예쁘고 젊은 엄마

오십 앞에서 배우는 나이의 상대성

by 맛있는 하루

"아이고~~! 예쁘다, 예뻐! 진짜~~ 예~~~~~뻐!"

"우리는 젊은 엄마 수영하는 거 보는 게 너무 재밌고 예뻐서 이렇게 매일 열심히 걸으러 와요."




헉헉.

오늘은 몸도 무겁고 왜 이렇게 물잡기도 안 되는 걸까. 이만하고 그만 나갈까? 레인 끝에 기대어 숨을 고르던 찰나였다. 매일 만나는 수영장 친구님들이 나를 보며 웃으신다.


소녀 같으신 할머니와 신사 같으신 할머니. 오전 8시경 매일 수영장에서 만난다. 내가 다니는 곳은 강습 없이 자유수영 위주인 수영장이다. 4개 레인 중 한 곳은 걷기 레인, 나머지 셋은 수영 레인.


매일 7시 반경 입수하다 보니 수영하는 이들은 대부분 직장인 아저씨들이다. 걷기 레인의 두 할머니를 빼면 여성은 나 홀로. '여성'이라는 동질감으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오후에 수영을 다녀와 못 뵌 날이면, 다음 날에는 요란법석하게 인사해 주신다.


"우리 예쁜이, 어제 안 와서 아픈가 했어."

"어제는 오전부터 일이 있어서 오후에 왔어요."

"아~~ 그랬어? 잘했네, 잘했어. 일이 있어도 안 빠지고 수영하고 잘했어요~!"


뭘 해도 잘했다고 하신다.




내 나이 48살.


29살에는 곧 서른이 된다는 것에 기겁을 했다. 삼십 대에는 나이를 부정하고 살았다. 이제는 몇 살인지 네이버 나이 계산기에 출생일을 넣어야만 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건지, 알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이제 곧 오십이라는 생각에 소름 돋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결혼했을 때, 그때만 해도 오십과 거리가 먼, 영원히 이십 대인 줄로만 생각했다. 아니, 나이 들어감에 대한 생각조차 없었다. 어느새 큰 조카가 내가 결혼했던 나이가 되었고, 아들 녀석이 군 복무 제대를 앞두고 있다니.


점점 나이 들어감은 숫자만이 아니다.


남편 회사에서 복지 차원으로 제공되던 격년제 건강검진은 내년부터 매년 지원된다고 한다. "왜? 굳이?"라고 묻자 남편이 말했다.


"매년 건강검진을 할 나이라서?"


소위 '걸어 다니는 종합 병동'인 내게 올해만 추가된 병명이 또 얼마나 많은가. 자꾸만 늙어가는 게 속상했다. 수영장 할머니 친구님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pexels-koolshooters-9872735.jpg 이미지 출처: pexels.com


"어제는 왜 안 왔어?"

"병원 검사가 있어서 오후에 왔어요."


"어디가 아파?"

"그냥 검사할 게 좀 있어서요."


"괜찮을 거야. 그럼 그럼. 이렇게 젊고 예쁜데."

"에이.. 제가 뭐가 젊어요."


"아냐.. 오십이면 젊지. 오십 대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아직, 오십은 아니랍니다~!! 흐흐."

"거봐. 젊잖아."


환한 하늘색 수영복도 잘 어울리고, 날씬하고 젊고 예쁘다고 날마다 기분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상당수지만, 어깨가 으쓱해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 헉헉거리며 몸이 무겁다고 툴툴거리던 게 오늘이 아니라 어제였나.


"젊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래, 우리 예쁜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해보고 싶은 거 다 해. 요샌 백세 시대인데 칠십도 젊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 문득 예전 주일 예배 때 들었던 목사님 말씀이 떠오른다. 설교 제목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문장만은 또렷하다.


"젊지만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또 반대로 늙었지만, 젊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젊지만 늙은 할머니는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


아직 오십도 안 되었는데, 뭐가 이렇게 제약 조건을 많이 달고 살았는가.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해보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미국의 국민 화가 '그랜마 모지스' 할머니도 75세에 그림을 시작해 101세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던 말처럼, 나이는 정말 상대적인 것일지 모른다.


"아이고~~! 예쁘다, 예뻐! 진짜~~ 예~~~~~뻐!"

"우리는 젊은 엄마 수영하는 거 보는 게 너무 재밌고 예뻐서 이렇게 매일 열심히 걸으러 와요."


오늘은 엄청 헉헉거렸지만. 또 수영 선수가 될 것은 아니지만. 더 젊고 발랄하게 수영을 해야지.


지금 이 순간, 수영만큼 재밌는 게 없으니까. 또 팔십 대의 내 수영 친구님들에게 재밌는 볼거리를 선사하기 위해서, 발랄하게 어푸어푸 해야지.


나는야 수영장의 예쁘고 젊은 엄마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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