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봉 말고 전기장판
찰랑찰랑. 오늘따라 물의 밀도가 유독 높다. 푸딩 같다. 쪼개지지 않게 사뿐히, 두 손으로 결을 살살 밀고 나간다. 저항이 아니라 협상이다. 물과 나, 둘이서 조심스럽게 밀고 당기는 협상.그런데 어느 순간이었다. 팔이 입수하는 찰나, 작은 틈이 생겼다. 푸딩이 쪼개졌다. 액체가 나오며, 귀 속으로 물이 들어왔다.
콩콩. 쿵쿵. 코ㅡ옹 코옹.
레인 끝에 서서 귀를 털어본다. 한 발로 뛰고, 두 발로 뛰어도 본다. 물은 나오지 않는다. 넓은 수영장보다 좁은 내 귓속이 탐험하기 더 좋은 모양이다.
온 세상이 웅웅거린다.
언젠가 수영 선배가 말했다.
"절대로 면봉이나 돌돌 만 휴지로 물을 빼내려고 하면 안 돼. 그냥 냅둬. 물도 그러다 포기하고 나와."
휴지를 말아 귀에 넣었다가 귓속 염증으로 한참 수영을 쉬었다는 경험담을 들으며 마음에 새겨두었다.
귀마개 이야기도 들었다. "수경에 거는 귀마개가 있어. 나는 그래서 아예 귀마개를 해." A 회원님의 팁을 따라 한 번 써봤다. 물속 세상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됐다.
뽀로록. 뽀록. 뽀록.
첨벙, 찰랑, 차알랑.
물을 헤치는 느낌 뿐만 아니라, 물 소리를 듣는 것도 내겐 큰 힐링이다. 찰랑이는 음악을 웅웅거림으로 바꾸기에는 너무 아쉽다. 귀마개, 탈락.
수영 실력은 날마다 조금씩 늘었다. 매일이 더 재밌다. 그런데 귀에서 물 빼는 실력만은 제자리다. 어쩐지 억울하다.
수영 경력 30년차 어르신이 방법 하나를 알려주셨다.
"물이 들어간 쪽 귀를 아래로 향하게 하고, 살살 헤엄쳐봐. 물이 가득 찬 느낌이 들 때 고개를 확 젖히면 빠져나와."
물을 더 넣어 물방울을 키운 다음, 기울기로 빼내는 방법이다. 이것이 안 되면 귓속을 진공 상태로 만드는 방법, 드라이기로 말리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 귀의 상태와 맞아야 한다. 맞지 않는 방법은 중이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은 물방울을 크게 만들기 방법을 써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면봉은 위험하고, 드라이기를 귀에 대기엔 왠지 무섭다.
그냥 둬보자.
귀에서 물을 빼야한다는 핑계를 대고 침대에 누웠다. 낮에는 좀처럼 눕지 않는다. 소리에도 예민해서 낮잠을 거의 못 잔다. 그런데 오늘따라 눕고 싶었다. 전기장판 온도를 높이고 눈을 감았다. 밖은 봄날인데, 왜 이리 삭신이 쑤시는지.
물아, 물아. 이제 그만 나오렴.
하ㅡㅡ아품, 하다 잠이 들었다.
잘 잤다. 아주 잘 잤다.
반나절은 잔 줄 알았는데, 10분이었다. 그 10분이 오후를 통째로 리셋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귓속 물은?
웅웅거리던 소리가 맑아졌다. 세상이 다시 선명해졌다.
귀에 물이 들어와 성가시다고 투덜댔더니, 도리어 단잠을 재워주려고 세상의 소음을 차단해준 듯했다. 앞으로 귀에 물이 들어가면, 전기장판 뜨끈하게 데우고 한 잠 자야지.
창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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