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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Oct 21. 2021

요리 (안) 해주는 엄마

괜찮지?

나는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야. 음, 귀찮아한다는 게 더 정확하고 사실 음식 자체에도 크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주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종류의 사람은 아닌 거지. 아마 너는 태어나서 모유나 분유 이후 가장 먼저 엄마의 음식보다는 누군지 모르는 식품 산업 종사자의 손맛을 먼저 경험하지 않을까 싶어. 운이 좋으면 J의 손맛을 먼저 볼 수는 있겠다(확률은 높지 않아 J도 요리에 관심이 없거든).


그렇다고 요리에 관한 문제로 너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다. 나는 그에 관해서는 나 자신에게도 지금 함께 살고 있는 J에게도 사과해본 적이 없으니까(사과받아본 적도 없고). 그리고 그건 누가 누구에게 사과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처음에는 나도 죄책감을 조금 느끼긴 했어. J에게 반찬가게에서 사 온 반찬으로 밥상을 차려줄 때(혹은 J가 동일한 반찬으로 내게 밥상으로 차려줄 때) 혹은 배달의 민족에게 의지하며 한 끼를 해결할 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도 요리를 좀 배워서 직접 해 먹어야 하지 않을까. 돈도 돈이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을까.


지금까지의 결론을 말하자면 그다지 건강에 큰 문제는 없었어(기초 체력 말고). 올해 초 정기검진을 받을 때도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너를 가진 후 산전검사를 받으면서도 나에게 부족한 영양소는 비타민 D 뿐이었다. 비타민 D는 어쩔 수 없지. 나는 어마어마한 집순이거든. 햇빛을 쬐는 날이 그다지 많지 않아. 그리고 지금을 살고 있는 모든 현대인들 중 비타민D가 모자라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너에게도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미안해하거나 어쩔 도리 없는 죄책감을 가질 생각은 없어. 무엇보다 요즘은 집에서 만든 음식보다 사 먹는 음식이 맛도 좋고 영양에도 좋은 경우가 많거든. 흠이라면 비싸다는 것인데 그런 만큼 나와 J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미보다는 방향성은 다르지만 어쨌든 최선의 결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거야. 이해해줄 수 있겠니?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도 종종 어린 시절 엄마가 해준 음식들이 추억으로 남아 생각나는 날들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던 건 너를 가진 이후였어. 입덧이 심해서 음식이란 걸 도무지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던 때인데 그때 생각나는 음식들이 이상하게도 어릴 때 나의 엄마가 해준 음식들이었어. 종종 간식으로 해준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긴 꽈배기 도넛, 매콤 새콤한 양념장을 곁들인 비빔국수, 감자와 당근이 많이 들어간 닭볶음탕, 새콤한 무생채 비빔밥 같은 것들. 


나는 유독 엄마가 해준 음식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간혹 맛이 없는 음식이 나오더라도 불평하지 않았어. 사실 나는 그냥 엄마가 해준 게 뭐든 좋았던 것 같아. 엄마가 시간을 내서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건 거의 대부분 음식이었거든. 그 외에는 엄마의 시간을 내가 공유하거나 가질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어. 우리 집은 맞벌이로 엄마, 아빠 모두 굉장히 바빴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사실 엄마의 요리 자체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요리를 맛볼 시간이었기 때문에 좋아했다는 게 맞을 거야. 그렇다면 꼭 매개체가 요리가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직접 만든 요리는 아니어도 함께 한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어도 충분하지 않겠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수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은 아주 기본적인 욕구로 표현되고는 하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요리에 서툰 여자 주인공이 좋아하는 남자를 위해 도시락을 만드는 장면들이 나오곤 해. 하지만 나는 그런 장면들을 보면 조금 불편해진다. 사랑이란 걸 애정이란 걸 너무 편협하고 간편하게 도식화해버리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무엇보다 요리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요리에 대한 욕구가 없는 사람은 그럼 어쩌란 말이니. 뭘로 사랑을 표현하라고?


상대를 사랑하지 않아서 요리를 하지 않는 게 아니야. 다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마 너도 자라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걸 차차 알게 될 거야. 아니, 그 다른 방식들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게 좀 더 솔직한 나의 바람이다(다른 글에서도 말한 것 같은데... 잔소리 같니?).


말하다 보니 역시 변명같이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오해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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