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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Oct 20. 2021

너는 사랑스럽지만 말이지...

적당히 해줄래?

처음 태동을 느낀 건 16주를 막 지나면서였어. 무척 빨리 태동을 느낀 거라고 하더라. 초산의 경우 18주나 20주쯤은 되어야 태동을 느낄 수 있다고 했거든. 간혹 몸이 말랐거나 예민한 임산부의 경우 15주나 16주에도 태동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해. 아마 나는 둘 다 였을 거다. 난 진짜 몸의 변화에 예민하고 입덧을 하느라 살이 더 빠져서 당당하게 말랐다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버렸거든.


16주가 지나니까 배만 볼록하게 나오게 되었어. 그리고 그 안에서 꿈틀(?) 거리는 너를 느끼게 되었다. 정말 뭐라 설명할 수가 없어. 꿈틀대거나, 꿀렁대거나, 톡 치거나, 다시 꿀렁대는 것 말고 설명할 말이 없달까. 말해두지만 이건 나의 어휘력 문제가 아니야. 정말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돼. 간혹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도 말하지만 그건 좀 더 네가 큰 후의 느낌이 아닐까 싶기도 해. 물방울이 톡 터지는 느낌이라고도 하는데 그것보다는 좀 더 묵직하지. 분명한 건 속이 좋지 않아서 장이 요동치는 느낌과는 정말 확연하게 다르다는 사실이야.


그 미미한 움직임은 오롯이 현재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너의 존재감이야. J는 아주 많이 궁금해하지만 접해볼 수 없는 감각이지. 간혹 J가 둘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네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둘째라니,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말해. 둘째는 네가 낳아줬으면 좋겠다고(입덧도 태동도 다 가져). 지금의 나는 너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지금은 말이지.


정말 신기한 경험이야. 내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거든. 내 안에서 그 작은 존재감을 꼬물거리며 뽐내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아주 사랑스러워.


얼마 전 출산을 한 친구는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자마자 이삼일에 한 번 꼴로 아기 사진을 보내고 있어. 임신 자체에도 조금 심드렁한 느낌의 친구였기 때문에(무슨 일이든 좀 심드렁한 편이긴 하지만) 그 모습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뱃속에 있을 때와는 엄청난 차이로 눈앞의 아이가 너무 예쁘다는 거야. 나는 겁나. 보이지 않는 너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그것과 엄청난 차이로 더 더 더 사랑스럽고 예쁘다고? 하루 종일 널 물고 빨고 놔주지 않는 팔불출이 되면 어쩌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임신과 출산의 과정 자체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고 한다. 종종 아니, 자주 왜 남편은 저렇게 해맑은 얼굴로 멀쩡하게 아기를 안아보는데 자신은 그 고생을 다 하고 아기를 안아봐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도 해. 나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어. 입덧 때문에 괴로울 때, 입덧이 지나간 후에는 몸이 무거워 괴로울 때, 이리 움직여도 저리 움직여도 불편해서 잠이 오지 않을 때, 세상모르고 편한 얼굴의 J를 보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더라.


하지만 어쩌겠니, 그 억울함과 맞바꾼 감정이 지금 이, 너와의 작은 유대감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어. 지금의 너의 존재감은 J는 느낄 수 없고 나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니까. 16주가 지나면서 간뇌가 발달하기 시작한 너는 내가 느끼는 감정도 함께 공유할 수 있다고 해. 내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일이 평생에 몇 번이나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거의 없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거야.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그렇다면 도저히 그건 상대에게 전할 방법이 없거든.


그런데 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고 공유하고 있다는 거잖아.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밤에는, 새벽에는 좀 적당히 해주면 안 될까? 움직이는 거 말이지. 네가 사랑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그 격렬한 움직임 때문에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가 너무 힘들어 괴롭거든. 잘 자고 잘 먹는 게 임산부에게 중요하고 수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너도 공유하는 거라면 너도 좀 협조해야 하지 않겠어? 똑똑.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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