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식재료 컬러와 맛
더운 여름부터 싸 다니기 시작한 도시락은 국물이 없는, 냄새가 나지 않고, 상하지 않은 식재료 방울토마토와 닭가슴살이 전부였다. 출퇴근 시간 왕복 4시간 동안 더운 여름을 잘 견딜 수 있을까에 고민으로 아이스팩도 넣어 다니면서 한 개였던 점심 도시락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늘어갔고,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회사생활에서 사람과의 관계는 점심시간과 이후 커피타임에서 친밀도가 형성되는데, 도시락을 싸다니면서 혼자 먹다 보니 거리감이 생기게 되었고, 코로나 이후 혼자 먹는 식사시간이 오래될수록 나 자신과의 외로움 싸움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요리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요리하는 걸 별로 즐기지 않는다. 결혼을 하고 겨우 블로그, 유튜브와 책까지 구매하면서 레시피를 보며 닭볶음탕, 김치찌개, 된장찌개 또는 반찬을 만들었다. 볶음밥이나 감자, 고구마로 만든 샐러드는 요리에 속하지도 않았다. 한동안 밖에 자극적인 맛에 노출되어 집에서 끓인 찌개류는 싱겁게 느껴져 고춧가루와 액젓을 넣고, 간장, 소금으로 간을 해가며 조금 더 진한 맛을 냈고, 결국 마법의 가루를 넣게 된다.
SNS에서 보이는 화려하게 올라온 음식 사진들을 보면 난 왜 이렇게 못할까? 요리책을 구입해서 보다 보면 따라 할 엄두가 나지가 않고, 누군가에겐 간단한 파스타도 조리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다 보니 재미도 없고, 맛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신랑의 요리를 먹거나 배달된 요리를 먹고 설거지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결혼 전 독립생활을 하는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아침은 거르거나 빵과 커피, 회사에서 급식 또는 밖에서 사 먹고, 저녁은 배달 음식, 포장음식으로 간편하게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야근이라도 하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도시락, 삼각김밥, 떡볶이, 분식 또는 치킨, 피자, 중식 등 자극적인 배달음식으로 배를 채우기에 바빴던 나였다. 치킨도 양념치킨만 좋아했었고, 빵도 슈크림이 잔뜩 들어간 걸 좋아했다.
그러다가 처음 내가 나를 위해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것이다. 내가 먹어보지 못한 것들을 사각형 안에 담는 시간 자체가 재미가 있었다. 온전히 나를 위해 집중하는 시간이고, 늘 양념 속에 가려졌던 연근조림, 반찬들은 도시락을 싸면서 냄새가 안나는 위주로 담다 보니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를 담게 되었다.
때론 친정집과 어머님이 보내주신 반찬들을 넣을 때도 있고, 내 입맛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 기본적으로 섭취해야 되는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담고, 제철 야채와 과일을 담다 보니 어느새 컬러풀하게 변해있었다. 도시락을 싸면서 메뉴 고민을 안 하게 된다. 사내 급식이 마음에 안 드는 메뉴가 나오면 간식을 더 먹게 되는데, 그럴 일도 없어지고, 저녁을 도시락으로 먹으니 과식도 안 하게 되었다.
세 끼를 먹는 것뿐인데, 왠지 하루가 알차게 느껴지고, 뿌듯하게 마무리한 기분이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2시간을 버스와 지하철 속에서 견디다 30분 일찍 사무실에 도착해 든든하게 아침을 시작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오전 업무를 마무리하면 상쾌하다. 점심 먹은 이후엔 늘 나른하고 졸렸는데, 도시락을 먹은 이후로는 포만감은 높아도 소화도 잘되고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서 퇴근 전까지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도시락에 깨끗하게 담다 보니 음식을 먹어도 깨끗하다. 자연 식재료의 본래 컬러를 알게 되고, 양념 속에 가려져 가지고 있던 자연의 맛을 처음 알게 된다. 요리실력이 부족한 내가 양념없이 생으로 먹어보기도 하고, 데쳐서, 쪄서, 볶아서 어쩔 땐 살짝 무쳐서 같은 재료라도 매일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도시락을 싸다 보면 재미가 있다.
-새로운 음식을 오래된 접시에 담아 먹자
-물이 아닌 것을 '물처럼' 마시지 말자
-간식보다는 식사에 집중하자
-입맛을 바꾸자
-균형을 바꾸자
-절대량이 아닌 비율에 따라먹자
-단백질과 채소를 먼저 먹고 탄수화물을 나중에 먹자
-다양하게 먹자
-음식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우자
-유행에 뒤처진 입맛을 갖자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자
-자신의 감각을 이용하자
더 나은 품질의 식품에 투자하는 것은 곧 땅과 공기, 더 나아가 건강과 기쁨에 투자하는 것이다.
‘식사에 대한 생각’ 중에서
일에 몰두하다 보면 식사시간을 놓칠 때가 많다. 먹는 게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여 대충 입 안으로 넣기만 했다면, 이젠 하나를 먹더라도 조금 더 생각을 가지고 먹게 된다. 단순히 몸속으로 음식을 넣는 행위가 아닌 치아로 씹어서 하나하나 풍미를 느끼고, 무엇을 먹는 건지 감각을 이용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게 된다.
자연이 준 컬러, 같은 식재료라도 농부에 따라 기른 환경에 따라 다른 맛에 감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