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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타임 Jun 27. 2021

마늘 빻는 소리

좋아하는 저녁 풍경이 있다.
간혹 시골길을 지나다 보면 집집마다 밥 짓느라 모락 거리는 저녁연기가 보인다.
눈으로 그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후각도 타닥거리는 아궁이 냄새를 떠올리고 있다.

할머니 집에는 시꺼멓고 반질대는 가마솥이 있었더랬지...
가마솥 뚜껑을 여는 할머니의 모습은 뜨거운 김에 싸여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고, 할머니 모습보다 더 빨리 눈앞에 보이는 건 검은 가마솥 속 새하얀 쌀밥이었다.

곧 기억은 할머니의 부엌을 떠나 엄마의 부엌으로 옮겨간다.
토닥토닥 엄마의 마늘 빻는 소리.
식사 준비를 하다 보면 제일 귀찮은 게 마늘을 빻는 일이다. 그래서 난 1년 치를 냉동실에 갈아두고 쓰지만, 엄마는 끼니때마다 도마 위에 마늘 몇 쪽을 올려놓고 큰 식칼 손잡이 뒷부분으로 토닥토닥 마늘을 빻았다.
때론 늦은 밤에도 그 소리는 소음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 소리가 들리면 저절로 맛있고, 아직 가스에 불이 올라가지 않았는데도 온기가 서리고, 그날을 사는 동안 내게 깃든 모든 불안으로부터 내 마음은 멀어진다.
그 소리는 내가 따뜻하고 안전한 세상 속에 들어있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나의 식탁. 오늘도 온기 없는 소꿉놀이 같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질 좋은 식재료와 인터넷 속 가장 인기 있는 레시피, 게다가 때때로 일부러 주문해온 건강식들을 가지고 차려낸 식탁임에도  겨우 드는 생각이 살이나 찌지 않을까...

분명 나의 밥상은 할머니나 엄마의  밥상보다 사람을 더 오래 살게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음식을 먹고는 밥그릇 한공기 만큼의 온기도 세상에 뿜 질 못할 것 같다.
하기야 우린 늘 쿨한 걸 좋아했으니... 그렇게 우리 식대로 쿨하게 살아가려나.
할머니의 가마솥 흰쌀밥도 엄마의 마늘 빻는 소리도 다 사라지고는 나는 무엇을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가득 밥상을 차려놓고도 오늘도 내 밥상은 무언가가 부족하다.

어젠 하루 종일 화가 났고 오늘은 하루 종일 마음이 냉랭하다 했더니 다 이 밥상 때문인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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