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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타임 Jul 26. 2021

여름

기온이 높아진다, 여기저기 에어컨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직은 여름의 전조일 뿐이다.

그러고 며칠 후  매미소리가 들렸다. 달력에 드디어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표시다.

매미소리는 흉내 낼 수 없이 독특하고 자세히 들을수록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었다.

그럼에도 7년을 견뎌 7일을 사는 그들의 스토리 때문지 그 소리는 늘 신비였다.

실컷 더 울어라.


그렇게 시작된 계절은 과일향을 타고 무르익는다.

매미소리가 세상을 덮을 때쯤 길거리 과일상에는 복숭아와 자두가 한 좌판에 만난다.

그 둘이 만나야만 내는 향기가 있다. 그 향기가 발을 잡아 날 돌아보게 만들면 드디어 여름은 절정에 다다른 것이다.

계절은 늘 그렇듯 절정에 이르면 다음 계절을 향해 주저 없이 린다.

과일집의 달콤한 향기 앞에 난 곧 여름 끝의 매미소리와 가을초의 풀벌레 소리가 섞여 들릴 혼란스러운 시간이 올 것임을 알아차리고  최대한 덜 휘청거리도록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렇듯 소리와 향기로 시그널 주는 일들은  오감 속에 저장해둔 옛 기억들을 생각지 않은 순간에 불쑥불쑥 꺼내어 놓는다.


여름은...


여름 방학 시골 고모집.

사촌 언니들과 '탐구생활'을 공유하며, 

목적도 없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잠자리를 곤충채집통에 채워 넣겠다는 일념으로살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여름은 모험의 계절이었다.


스물이 조금 넘어서는 해운대.

나 젊어요~ 할 만큼의 적당한 노출과 함께 여름 밤바다가 들려주는 비트에 몸과 맘을 맡긴다.

온 세상 사람을 다 만날 기세로 에너지가 넘친다.

너도, 나도, 쟤도, 얘도... 그저 사람이 은 계절이었다.


서른이 한참 넘었던 그 해.

푸켓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들고는 기분이 좋았던 그날 갑자기 몸에서 무언가가 발견됐다.

9월 초로 검사날짜가 잡혔다.

그리고는 그해 나의 여름이 사라졌다.

매미 울면 나도 울고, 파도치면 내 마음도 요동치고.

(난 겁이 많다. 그것도 아주 아주 많이 많이)

나의 여름을 삼켜버린 그 검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고, 결과는 더더욱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름을 주고 삶을 받은 것처럼 건강 검진하러 온 무표정한 사람들 틈에 끼어 나 혼자 펑펑 울었고, 화장실에 다녀오던 우리 가족들은 그런 날 보며 배를 쥐고 웃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계절이기도 했다.



오늘의 여름은.

여름은 홀로 거리에 있기 좋은 계절이다.

홀로 있다가 바람이 살갗에 스치는 순간이 와도 가을처럼 마음까지 들리진 않는다.

길거리 그 어느 곳에도 몸 붙일 곳 없는 겨울과도 다르다.

마음을 안심시켰다가 방심하는 틈에 겨울의 칼바람보다 더 앙칼진 추위로 사람을 아프게 하는 봄과도 분명 다르다.


하얀 수국 밭에 싸인 평상에 일찌감치 자리 잡고 앉았다.

명당이다.

수국에 둘러싸여 나만의 요새가 만들어지자 매미소리가 요새를 더욱 견고하게 하더니, 

소리를 타고 온갖 나의 여름들이 그 속으로 쏟아진다.

한참을 평상에 앉아 있다 몸의 방향을 틀 바라본 곳에 하얀 수국 위로 노을이 시작됐다.

오늘의 여름은 홀로 있어도  모든 게 황홀하기만 했다.

곧 가을바람이 불 것이다. 그전에 수국 밭에 자주 와야지 다짐을 하니 여름이 수일 내로 사라질 것처럼 마음이 조급해진다.


오감 속에 이렇게 또 하나의 여름을 저장해 둔다.

늘 여름이었으나 늘 그 모습은 달랐다.

그리고 한결같이 난 여름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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