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유나 May 28. 2023

봉사

봉사를 위한 봉사를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요한 신부님이 문화상품권을 건네주셨다. 몇 주 전, 한일 부부의 혼인면담과 예식 때 내가 일본어 통역을 해 드린 것에 대한 신랑 어머니의 선물이었다. 신부님 당신도 내게 선물을 주고 싶어 하셨지만 나는 괜찮다고 사양했다. 이번 일을 준비하며 이미 신부님께 식사도 대접받았고, 생각하지도 못한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그저 그런 내 일본어가 쓰였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봉사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과 아무런 대가가 없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나는 평상시에 믿고 있었다.



   나는 갓 세례를 받은 20대 후반에 '청년 성서모임의 봉사자’로 성당에서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청년 성서모임의 봉사자는 서너 명이 모인 한 그룹을 담당하여 그룹원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알려주고, 성경 내용에 기대어 서로의 생각과 삶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모임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교육 수료 등의 일정 조건을 만족해야만 했기 때문에, 첫 그룹을 배정받았을 때 나는 정말이지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기쁨만 가득할 줄 알았던 봉사활동은 생각보다 괴로울 때가 많았다. 모임에 결석한다는 연락이 오거나 그룹원들의 사정으로 그날 모임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마다 그룹원들이 내 수고로움을 무시하는 듯한 기분에 분노와 실망을 느꼈다. 그리고 봉사 준비를 위해 관련 참고도서를 읽을 때면 내 선배 봉사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알려줬던 내용도 종종 찾아냈는데, 그것은 자만심이 되었고 '이렇게 맥락을 잡아서 설명을 잘해주는 봉사자가 어디 흔한 줄 알아?'라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랬다, 부끄럽게도 당시의 나는.



   분노와 자만심, 실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봉사를 한다는 것은 분명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감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고, 거듭되는 자책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입으로만 '봉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봉사라는 허명으로 자신의 '그럴싸함'을 드러내고 싶었고, 그 안에는 이기심이 가득했다. 그것은 진정한 봉사가 아니었다.



    봉사에 대해 20대에 이러한 혹독한 고민과 반성을 한 덕분인지, 요즘에는 그래도 그런 마음에서 꽤 자유로워진 것 같다. 물론 완벽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요즘에도 봉사를 할 때는 모든 욕심과 생각을 비우려고 무척 애쓴다. 그리고 가끔 무엇인가의 욕심이 솟아날 때 생각한다. 신(神)의 손길이 닿는 곳에서 노력과 시간을 봉헌하는 것인데, 설사 인간적인 욕심을 채운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미사 중 사제의 손이 닿는 제의(祭衣)와 제구(祭具)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에 내 부족한 손을 도구로 써 주시는 것만으로도 마음 다해 감사할 일인 것을. 



   문화상품권을 안 받을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주신 것이니 필요한 책을 구입할 때 귀히 써야겠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갖고 있는 무언가를 기꺼이 내어놓는 마음만으로도 신은 나를 다정하게 품어준다는 것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뜻대로 그러나 올바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