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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Nov 07. 2023

내 마음에 당신의 빛이 가득하면.

신앙생활의 걸림돌 - 가톨릭 예술가 커뮤니티 잔잔 8월 챌린지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겸, 좋아하는 책들을 오랜만에 꺼내어 몇 장 넘겼다.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으로 아내를 잃은 나가이 다카시와, 나의 성녀 에디트슈타인은 오직 '하느님' 그 자체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주는 사랑과 은총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것 자체가 그들의 목적이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이 살던 삶의 길을 따라,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느끼며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목적'과 그 '목적으로 가기 위한 도구'가 헷갈리거나, 심지어 '도구'가 '목적'이 되어버릴 때가 있다. 그 상태를 그냥 두면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신앙은 나아간다. 그래서 내 삶과 신앙이 빛을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지 늘 고민해야 한다.

  본당 청장년회의 담당 사제인 요한 신부님께서 단체 구성원들과의 면담을 앞두고 '나는 왜, 무엇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아버지 없이 혼자서 치렀던 엄마 장례식 때 성당의 봉사자분들은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 사랑에 대한 보답 때문이라도 신앙생활과 성당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간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벌써 엄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으니, 신앙의 의미를 다시 세워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보답'은 엄밀히 말하면 도구이지 목적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궁극적으로 무얼 위해서인가.

  며칠의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하느님 없이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생각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것이 정답이었다. 나는 나약하고 너무나 많은 유혹에 늘 흔들린다는 걸 먼저 고백해야만 했다. 나의 부족함을 내 힘으로 채우려는 욕심은 자책과 비관으로 이어졌지만, 당신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은 내 공허한 마음에 하느님의 자비와 온유로 가득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 대한 욕심과 주변의 수선거림을 비웠다. 오직 주님만을 눈에 담고, 나에게 내리쬐는 하느님의 사랑을 한가득 느끼는 것이 나에겐 가장 필요했다. 오직 간절히 희망하는 건, 나약한 내가 매일을 무사히 버티도록 이끌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니까.     

  가지치기한 줄기마다 노란 장미가 소담스럽다. 정리한 가지 끝에는 꽃망울이 자리 잡더니 어느새 꽃이 활짝 폈다. 나 자신을 비워낸 마음에 당신의 빛이 가득하면 나의 부족한 신앙도 언젠가 저 장미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리라.        






              

묵상글>


마음의 사사로운 것들을 모두 버리고 주님만을 두 눈에 담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저는 마음 그릇이 작아서 삶의 목적이어야 하는 주님 대신,

티끌 같은 고민과 욕심을 가슴에 품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다 보면 고민과 욕심이 마치 내 몸의 일부분 같아서

버려야 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쉽게 놓지 못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서 나약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다는 걸 깨닫고 고백했을 때

마음을 가득 채웠던 어둠이 차츰 사라지고,

오히려 행복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글은 그 순간을 적은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힘이 머물도록

자신의 약점을 기쁘게 자랑한다는 마음'(코린 2 12:9)이

이런 것인가 싶었습니다.

저는 부족한 인간인지라 그때의 은총 가득했던 기쁨을 아마 곧 잊어버리겠지요.

그러나 공허한 마음을 고백하자 빛으로 채워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글로 남겨 오래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싶다던(갈라 6:14)

바오로 사도의 기쁨 가득한 마음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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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은 가톨릭 신자 혹은 사제, 수도자이면서 예술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모인 커뮤니티입니다.

매달 신앙과 관련된 공통의 주제를 갖고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작품을 발표합니다.

사진과 조각, 그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발표되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잔잔' 인스타그램을 방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잔잔 인스타그램 주소

www.instagram.com/janjan_c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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