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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Dec 23. 2020

시댁과 매너 거리

상처 받지 않을 만큼의 거리

결혼 20년 차.

사정상 남들보다 조금 늦게 들어간 대학교에서 동갑내기 남편을 만나,

뜨뜻미지근하게 연애를 하다가 돈은 없지만, 착한 거 하나 보고 결혼을 했다.

계속 맞벌이를 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에 있어 나에게 돈이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건. 방. 졌. 다.


우리 시부모님들은 참 좋으신 분들이다.

잘해주시고 예뻐해 주시는데, 나는 불편했다.

그렇기에 내가 느끼는 죄책감은 상당했다.

결혼하고 10년까지는 매주 시댁을 방문했다.

일이 생겨 못 가면 시부모님께서 보고 싶다고 우리 집으로 오셨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매주 갔었다.

내 생활이 지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가기 싫어졌다.

남편에게 아무리 얘기해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내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시댁에 가는 횟수를 한 달에 두 번에서 한 번으로, 지금은 행사가 있을 때만 간다.


그렇게 어렵게 시댁과의 적당한 거리가 만들어졌다.

요즘 시조카들의 공부를 봐주면서 문제가 생겼다.

데려다주면서, 간식을 사다주시며 소소한 일로 자꾸 만나고 통화를 하게 된다.

내가 10년 걸려서 어렵게 만들어 놓은 나의 적당한 거리가 한순간 확~ 좁혀진다.

경고등이 켜진다.


이 사람 간 적당한 거리는 비단 시댁과의 얘기만은 아니다.

부모. 형제, 직장동료, 이웃, 자식과도 어느 정도의 매너 거리는 있어야 서로가 편하다.

10대. 20대 어린 시절에는 주변에 사람이 많고, 약속이 끊이지 않는 흔히 말하는

인싸의 삶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워킹맘으로 큰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아는 엄마가 없으니 안면 좀 트려고

부르는 곳은 이곳저곳 만사 제쳐두고 찾아다녔던 씁쓸한 기억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50을 바라보는 지금 그 적당한 거리가 확보되지 않는 관계에서는

어느 한쪽이 불쾌해지는 문제가 생기기 쉽다.

그야말로 슬픈 계산이 없었던 시절에 만났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도

자식 문제나 재산 등 예민한 이야기는 조심하는 게 맞다.


다시 돌아와 시댁과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한 일이 있었다.

정말 시부모님은 나를 딸처럼 생각하시는 듯하다.

어떤 때는 딸보다 더 믿고 의지하신다.

문제는 여기 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딸이 될 수 없다.


어머님은 나를 붙잡고 힘들게 살아오신 얘기를 하시며 우셨다.

한. 두 번이야 듣고 같이 울어줄 수 있지만 매번 반복되니 내가 점점 힘들어졌다.

이후 또 그런 이야기가 나올 조짐이 보이면,

"어머니, 우리 밝은 얘기 해요. 저는 울면서 얘기하는 거 별로더라고요."

하고 화제를 돌린다.


15년 전쯤의 일이다.

지금도 미혼인 시누이의 맞선남 조건을 말씀하시면서 꼭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 조건을 들어보니,

큰아들도 아닌 둘째에,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조그만 장사를 하는데 돈도 잘 번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순간 드는 생각은... 그럼 나는?

큰아들에,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돈도 없는 아드님과 결혼한 나에게는 남편 잘 만났다고 하시면서.

(물론 시아버님은 남편에게도 와이프 잘 만났다고 말씀하신다. 횟수의 차이는 있지만...)

이 생각이 한번 들고나니 머리와 가슴에 박혀 아직도 빼지 못하고 있다.

시부모님은 기억도 못하실 얘기다.

진짜 나를 큰딸로 생각하셨나 보다 싶으면서도,

나의 존재에 대해 조심하지 않으시는구나... 하는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시부모님은 선한 분들이다.

그래서 맘 놓고 미워할 수도 없다.




사전에서 찾아보니

거리감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간격이 있다는 느낌.

보통 친숙하지 않아 서로 마음을 트고 지낼 수 없는 서먹서먹한 느낌을 이른다고 나와있다.

내가 얘기하는 거리두기는 이 거리감과는 결이 다르다.

어찌 보면 매너 거리라고 해야 맞을까?


나에게 한발 다가오는 사람을 향해 좋은 마음으로 웃으며 한발 물러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딱 붙어서 마주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이 넘어질 때 함께 넘어질 수밖에 없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잡아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모든 관계에서 이 적당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조심하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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