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 Nov 27. 2020

군기반장 큰엄마와 말썽꾸러기 조카 3

공감능력 부족

아이들의 수학. 영어를 봐주기 시작한 지 이제 막 4주 차에 접어들었다.

그저께 막내 녀석에게 사건이 하나 있었다.

요 녀석이 나에게 혼날까 봐 그런 건지, 아니면 진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건지 알 수 없지만

공부를 하러 와서 나에게 학교에서 별일 없었다고 했는데, 얼마 안 가서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이를 바꿔달라시길래 바꿔드렸고, 통화하는 내용을 옆에서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인 즉,

아이가 하교 후 놀이터에서 혼자 발차기하고 태권도하고 구르고 별거 다하고 놀다가

옆에서 달려오는 아이를 때리게 된 것이다.

맞은 아이는 아프니까 당연히 울었을 것이고, 조카는 대수롭지 않게 티격태격하고 끝냈을 것이다.


내용을 파악하신 선생님이 친구에게 사과할 수 있겠니? 했더니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사과해야 해요?"


초등학교 선생님도 참 극한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아이의 성의 없는 대답과 선생님의 속 터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화가 얼마간 이어지다가 통화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못된 큰엄마와의 대화시간

아이는 자기 시야에 없었고 그 애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맞은 거니까 내 잘못은 없다.

그러니까 내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다고 주장하고.

(여기서 '시야'라는 말을 쓰길래 살짝 당황했다.)


일부러 낸 교통사고가 아니라도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으면 사과를 해야 하는 거라는

나의 주장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은 나에게 유리했다.

똥개도 50% 먹고 들어간다는 "내 집"이었고,

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절대 너를 보내지 않을 거고,

치사하지만 결론이 나기 전까지 간식은 없다.


결국 아이가 맞은 친구에게 간단한 사과쪽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협상이 끝났다.

근데, 요 녀석이 사과편지 쓰는 걸 보니까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미안해, 그렇지만 너도 잘못한 게 있어"

이건 사과도 아니고 뭣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그 작은 쪽지 하나 쓰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런 대화를 이어가면서 불현듯 드는 생각

공감능력 부족도 유전이구나


시아버지가 그렇고, 애들 고모가 그렇고, 요 녀석이 그렇다.

상대가 화를 내는 이유에 포인트를 잘 모른다.

내가 요즘 애들 고모랑 그 공감능력 부족 때문에 한참 시끄러운데 얘도 그렇구나...


처음에는 그게 공감능력 부족이라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몇 년 동안 계속되는 트러블을 한 키워드로 얘기하자면 "약속"이었다.

예를 들면 김장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9시까지 오기로 했다고 하면 김장이 다 끝난

오후 2시에 온다거나,

명절이나 제사를 지내는 날에도 본인 입으로 9시까지 온다고 해놓고 10시 반이

넘어서 오고도 미안한 기색이 없다.

그러고는 당당한 얼굴로 하는 말이 "나는 아침에 못 일어나요"


20년을 참았지만 더는 못 참겠어서 올해 폭발했다.

그런데 내가 화내는 포인트를 잘못짚어내는데 환장할 노릇.

(갑자기 분위기가 며느라기 되어버렸네 ㅎㅎ)

결국은 내가 안보는 걸로 마음먹고 포기하기에 이르렀는데, 요 녀석한테도 비슷한 면이 보인다.

아무리 설명해도 "입장 바꿔 생각"이 전혀 안 되는 게 문제다.

사회생활할 때 이게 얼마나 치명적인 단점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시누이야 나이가 45이나 된 어른이라 내가 아무리 입 아프게 설명해봐야 바뀔 일도 없어 포기했지만,

요 녀석은 상황이 다르다. 그래서 애를 쓰고 있는데... 공감능력 부족한 것도 가르친다고 되려나?

난 참 포기가 빠른 사람인데 내가 포기하기 전에 바뀌어 주면 안 되겠니?


참고로 공감능력이란?

타인의 상황과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작가의 이전글 군기반장 큰엄마와 말썽꾸러기 조카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