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정신이 없다
1. 11월은 내가 힘들어 하는 달이다.
아마도 일년 중에 가장 추운 달을 꼽으라면 11월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갑자기 추워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게다가 뭔가 '상실'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계절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무가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그것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수분공급을 끊고 자신의 일부를 떨어뜨리고 생존을 택하는 방식이다. 수분 공급을 끊었을 때 나타나는 변화가 단풍이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이 결국은 나무의 치열한 생존방식에 근거한거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넓은 나뭇잎을 붙이고 있다간 다음 봄을 맞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때론 나무도 자살을 할 때가 있을까? 생명력의 끈을 놓아버리는 때가 있을까.
2. 올 해 11월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뭔가 예정되어 금방 들어 올 것만 같은 돈은 들어오지 않는다. 겨우 겨우 근근이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곧 낭떠러지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매달 월급이 나오던 때보다 마음은 참 편하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하지만 결제일이 되고 월세날이 되면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과외를 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늘려나가고 있다.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다. 나름 재미있게 가르치는 것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이동과 준비와 끝나고 나면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중간 과외업체에서 두 달간 오십퍼센트를 떼어간다. 뭐 어쩔 수 없지 싶으면서도 이게 뭔가 싶다.
3. 졸업작품은 빙빙돌고 있다.
동기들은 학기 말이면 공연시즌이 되어 공연준비에 정신이 없다. 과내 단체 카톡방을 보면 온갖 공지와 정신없는 톡이 잔뜩이다. 마치 남일같다. 그러면서 후배들의 공연을 보고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것을 본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들 중 한 분은 언제까지 학교에 있을거냐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밖에 나가서 해야지... 나도 하고 싶다... 그렇다고요...
금세 자존감이 무너지려고 한다. 나도 모르게 '그러게요, 나이도 많은데.......' 따위의 대답을 하다니.
4. 어마어마한 체중증가로 인한 갈등
작년 겨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을 하고나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상실감이 너무도 컸고 자꾸만 제자리만 뱅뱅도는 것같은 느낌에 정말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난 정말 웅대한 체중증가를 이뤄냈다. 오랜만에 본 선배가 왜 이렇게 살이 많이 쪘냐는 말에 나도 모르게 살의를 느꼈지만....... 몽롱한 나는 그냥 계속 이렇게 '잠시 부어 있다.'
내적갈등과 외부 세계와의 갈등. 게다가 건강악화. 쓰기도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들.
하지만 사실은 지금의 편해진 마음 상태를 즐기고 있기도 하다. 볼 때마다 날 못 알아보는 순간에 힘들긴 하지만 지금의 나도 나다. 그런 찰나에 66100 바디 이미지 캠페인 참가자 모집글을 봤고 마감 3시간 전이었다. 그냥 후르르르르르륵 신청을 했고 다음날 오전 바로 연락이 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촬영을 했고 정말 유쾌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포즈와 끼에 대해서 칭찬을 들었고 불어난 몸때문에 대충하고 다니다가 뭔가 꾸며보고 화장도 오랜만에 해서 기분전환이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불어난 내 몸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도 나라는 말이다.
5. 마음이 바쁘다
마음이 바쁘면 될 일도 안된다. 가던 길도 돌아가라는 말은 마음의 바쁨이 일을 그르치게 한다는 말이다.
내가 힘들었을 때 아빠는 산에서 잡초를 뽑으라고 했다. 땡볕에. 아빠와 엄마는 참 강한 사람이다. 뽑다가 화딱지가 나서 그만뒀다. 그러다가 아빠가 오미자 밭을 만들었고 농사꾼 체질은 아닌 탓에 오미자 밭을 매고 오미자를 묶고 거름을 주고 그랬다. 아빠에게 화도 나고 해서 다 해버리겠다는 분노의 김매기를 했지만 한 시간 하고 나가 떨어졌다. 한꺼번에 다 하겠다는 마음이 앞서나가니 몸이 뒤쳐져 그냥 나뒹굴었다.
그 이후 아빠랑 따로 김을 맸지만 다름이 노는 것도 보면서 쉬엄쉬엄했다. 시놉도 생각하고 소재도 생각하면서........ 그랬더니 반나절도 안돼 그 밭을 다 맸다.
김매기와 다를 것이 없다.
6. 생활에 더 충실해지기로 다짐한다
물 마시기. 소소하게 치우기. 거대한 목표말고 사소한 목표를 세우고 해나가기. 생활인으로써 자부심을 갖고 밥을 해먹고 설거지를 바로 하기. 요일에 맞춰 쓰레기를 잘 내다놓기. 고양이 털 빗기.
7. 모두 일상의 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이겠지
일상은 조용하다. 그리고 전쟁만큼 치열하다. 매일 밥을 해먹는 것. 장을 보는 것. 귀찮지만 세수를 하고 스킨을 잘 바르고 자는 것. 벗은 옷을 잘 정리해 두는 것.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미래를 위해, 오늘 하루 양식을 위해 노동을 하는 것. 시간에 맞춰 해야할 일을 하는 것. 대화를 하는 것. 아이를 돌보는 것. 가족을 돌보는 것. 기도를 하고 글을 쓰고 메일을 보내고 답을 보내고 수업을 하고, 공부를 하고.........
꾸준히 쓰자는 마음과 달리 일상을 살다보면 또 글과 멀어지고 ..또 글을 쓰다보면 일상이 멀어진다.
왜 이러는 것일까.
몸과 마음처럼 하나이지만 다른 둘.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나는 브런치를 한다.
그래도 날 쓰게 해준다.
#큐베이스를 배우고 있다. 웃긴 자작곡의 몇 마디를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