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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kim Oct 16. 2018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될 줄 알았다, 솔직히.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 될 줄 알았다, 솔직히.



어절을 끊어서 읽는다. 천천히 읽는다. 반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뭐 간혹 반전으로 쫄깃하게 만들기도 한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라고.

그리고 그 기회가 나에게 찾아온 줄 알았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퇴사다운 퇴사(의 결심), 면접다운 면접, 탈락다운 탈락. 그래서 아직도 서툴면서 낯설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하고 현실감이 확 사라지기도, 떠올리면 뒤통수가 같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현실감 등판하시기도 한다 아직도.


병원 직군은 과장을 꽤 보태면, 채용과정 중 1차 서류에서 80% 이상 결정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부 성적을 각 학기별, 전체 학기별 석차까지 디테일하게 기재하게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의 수는 적지만 으레 들어오던 선배들의 후기도 같고, 지금의 후배들도 마찬가지다. 이후 직무관련 케이스 스터디와 같은 필기시험이 있는 전형이 아니고서야 면접은 형식적이고 다대다로 만나 10여분이나 보나 싶지. 그 면접에서 결과를 긍정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는 건 꽤나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봐도 이번 일은 결과 무관! 너무 좋은 경험인 건 맞다.


아니 그렇지만!!!! 솔직히 될 줄 알았다.

처음부터 김칫국을 마신  절대 아니었는데(중고 신입인 내가  믿고 김칫국을 마셔), 8 말부터 10 초까지 길다면  시간 동안 맥반석 오징어처럼 바짝바짝 속이 타들어가는 내가 차근차근 스텝을 밟고 올라가니까 드는 생각이었다. '? 이러다 정말 되겠는데?(오열)' 하고. 공식 offer letter 아니었지만 근무 시작 시점을 내포한 이야기를 지원한 팀의 팀장님께 들었을 때도 설레발 떨고 싶어도   닫고 조용히 준비했다. 그런데 실무진 면접을 붙고 나니까, 이제 임원진 면접이 최종이라고 하니까  내용이 괜히   닿았다. 캐주얼 인터뷰  팀장님께서 내게 해주셨던 말이 있었는데, 회사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니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함부로 가벼운 행동을 하지 못하고 본인의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고. 그래서  내용이   닿았다. 내가  팀장님은 절대 경솔하게 말을 뱉으실 분이 아니었으니까.  어찌 되었건 인연이 되지 못했다1.


내가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때부터 오랫동안 평소에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던 회사였다. 구성원들 스스로 내뿜는 job love, 충성도의 원천은 그 회사의 조직문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조직문화를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팀의 자리가 났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욕심이 났다. '일해보고 싶었던 팀이 있는 회사'랄까. '팀'과 '회사'의 자리가 바뀐 것 같이 보이지만 충분히 저리 배치해도 될 만큼 궁금하고 욕심났었다. 뭐 어찌 되었건 인연이 되지 못했지2.


AI 아니고, 사람 마음인지라 요즘 내게 그 회사는 메두사가 되었다. 초점을 맞춰 직시하질 못한다. 보면 몸이 굳어버릴 것 같아 자꾸만 눈을 보지 못하고 이마 그 어딘가만 에둘러 쳐다본다. 최종 결과를 손에 들고 '그래도 끝났구나 후련하다'라고 생각하고 오전 동안 잘 털어내고 있을 때, 점심 이후 인스타그램에 그 자리 공개채용 광고가 뜨는 걸 봤다. 나는 왜 이 광고의 타겟이 된 걸까? 망할 페이스북. 망할 주커버그. 주야장천 나타나는 메두사 공채광고를 똑바로 볼 수 없어 hide this ad를 해버렸다. 계속 보고 있으니 그들에게 내 전형기간이 시간 낭비가 되었을까라는 자존감 후벼 파 먹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안 되겠더라. 그러나 여전히 그 회사의 시선이 궁금하고,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에너지를 알고 싶은 걸 보니 semi-양가감정인가 보다.


준비하는 동안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은 '직군 변경에 대한 확신'이었다. 배워야 할 것들도 많을 것이고, 극복해야 할 어색함도 분명 크겠지만 첫 째로 내 안에 하고 싶은 things와 방향이 있다는 걸 확신했다(task도 아니고, job도 아니고 things). 둘 째로는 난 어느 곳에 배치되어도 사막 속에서 민들레를 피워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서바이벌 패스 목걸이를 반납한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라진 것 하나 없는데, 조금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 결과는 내 인생의 사다리타기에서 어디로 건너가게 될 선로가 추가된 것일까. 그로 인해 나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어떤 길을 가게 될까. 내가 아니면 누가 날 제일 믿어주겠나 싶지만, 지금의 내 선택을 나는 믿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나를 속이고 있는 걸까.



(그림 출처: 인스타그램 @zipsoooni_travel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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