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a kim Oct 21. 2018

요즘 것들의 꼰대 DNA

꼰대가 꼰대인 줄 알면 꼰대겠느냐 (feat.김앵커)

요즘 것들의 꼰대 DNA

- 꼰대가 꼰대인 줄 알면 꼰대겠느냐 (feat.김앵커)



온라인 wiki 내용에 따르면 '꼰대'라는 단어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무려 1960년대에 동아일보에서는 '영감 걸인',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은어라고 쓰였으며, 경향신문에서는 탈선한 10대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부르는 또래 사이의 은어라고 설명했다. 이후에는 선생님 등 나이 많은 남자를 표현하는 것으로 의미가 넓어졌다가, 근래에는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여 본인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훈계 또는 강요하려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형되었다. 나는 꼰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그 어원을 '꼬장꼬장하다'라는 단어에서 나오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주름이 많다는 의미로 '번데기'의 사투리인 '꼰데기/꼰디기'와 나이 든 세대의 상징인 '곰방대'에서 축약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이다.


어느 학년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언젠가의 국어 혹은 언어 교과서에서 은어나 비속어 등을 배우는 단원에서는 어김없이 대표적인 은어의 예시로 '꼰대'가 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볼 때마다 이 단어는 교과서에 나올 만큼 모두가 아는데 이미 은어로써의 기능은 상실한 것이 아닌가라고 떠올리곤 했다. 내가 체감하기로는 꼰대라는 단어는 7080 시대에 쓰인 문학작품에서 등장하는 단어 정도이고 단어의 생명력은 점차 꺼져가고 있는 추세였다. 뭐랄까, 훔친다는 의미로 ‘뽀리다’라고 말 하면 옛날 사람이라 놀림 받는 느낌의 단어가 됐달까. 그러다가 불과 몇 년 전 2010년대 초반부터 단순히 성별(아저씨)과 나이 많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소통이 불가능한 권위주의자를 지칭하는 비속어로 사용되기 시작하더니 이젠 '젊은 꼰대'라는 단어까지 파생시켰다. 아직도 국어사전 등에는 학생들의 은어라고 설명되지만 이쯤 되면 은어가 아닌 공공의 단어로 올려줘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며칠 전 경주로 머리와 마음을 쉬러 가는 여행을 다녀왔다. 경주는 내게 연고가 전혀 없는 지역이었는데, 4년 전 부산과 가깝다는 이유로 방문하였다가 묘하게 끌려 현재까지 4년 연속 매년 방문하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곳만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단골 게스트하우스에 묵게 되었고, 첫날은 생기 있고 어려 보이는 친구 1명과 도미토리룸에서 하룻밤을 함께 하게 되었다. 어색한 침묵의 공기를 깨고 싶어서 시작한 "잠자리 예민하신가요?", "화장실 지금 쓰셔도 돼요."류와 같이 잔뜩 예의와 사회적 거리를 지키는 대화에서 자연히 각자의 경주 방문 이유와 숙박일 수 등의 내용까지 오갔다.


나야 내 지인들이라면 지겹게 들었을 이직 실패와 퇴사 후 마음과 머리를 식히고자 방문하였으며, 앞 날에 대해 생각도 잔뜩, 책 읽는 시간도 잔뜩 가지고 돌아갈 생각이라 소개했다. 그리곤 요즘 입버릇이 된 '직군을 변경하기로 결심하고 방향을 틀은 것에 대해 스스로의 확신을 의심하게 된다'며 약간의 찡얼거림이 담긴 한 마디로 마무리했다. 별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다. 그 친구도 역시 휴학생이라는 소개와 함께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에서 이틀 연일 휴가를 받아 오게 된 여행이라는 정도의 말만 했으니까. 어차피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잠만 같이 잘 것이고, 해가 뜨면 또 각자의 일정대로 움직일 사이인데 내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겠거니 싶었고 내가 혼잣말을 좀 크게 했다고 생각했다. 실례지만 퇴사하셨다는 이전 직군은 어디셨는데 뭘로 바꾸려고 하시냐는 그 친구의 질문도 그런 대화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아, 병원에서 일했어요. 간호사예요."

본인 침대에 반쯤 누워있던 그 친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리액션을 보였다. 어라, 이건 대화를 끝내는 게 아니라 더 집중하겠다는 반응인데, 뭘까. 나도 놀래서 눈을 껌벅거렸더니 하는 말이, "제가 휴학생이라고 했잖아요. 간호학과 3학년 마치고 휴학했거든요."였다. 재밌었다. 대한민국엔 간호사가 정말 많은 데다가 간호학생은 계속 늘고 있어 어느 집단에 가나 꼭 한 두 명씩은 있는 것이 간호계 사람이지만, 비수기라 경주 내 숙박객 많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필 둘이 같은 방을 쓰게 되었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로 시작했던 각자의 고민을 언급했던 대화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공부도 힘들고 진로에 대해 고민이 생겨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게 되었다고 술술 꺼내고 있는 어린 친구의 진심을 듣고 나니 어느 순간 내 앞에는 2012년도의 유나킴이 앉아 고민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나도 3학년까지 마치고 1년 동안 휴학을 했었다. 학과의 공부량을 따라가기도 버거웠고, 내가 생각했던 대학생활과 멀었던 모습에 깊은 정을 붙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근근하게 유지하는 학과 생활과, 그와 정반대로 애정을 쏟았던 대외활동으로 학부 시절을 버텼다. 휴학기간 동안 하고 싶은 일 꽤나 맘껏 해봤기에 후회가 없었고, 휴학기간이 끝나간다는 내 앞에 있는 어린 친구에게 자꾸 2012년의 유나킴이 보이니 이런저런 도움이 될만한 말들을 많이 해주고 싶었다. TMT(Too Much Talker)가 되려는 순간 스치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로 그 단어, '꼰대'.


내가 알고 있는  매우 제한적인 정보(간호학과, 3학년 후 휴학, 진로 고민)들은 나와 비슷할 지라도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또 나와 매우 다를 수 있다. 나의 조언이 어린 추천은 훈계로 전달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밟고 더 조심하게 되었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욕이 앞서서 어린 친구에게 딱히 도움되지 않는 나만의 이야기를 많이 말했다면 미안하니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살짝 부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선 경험자로서 메시지를 남겨보라고 한다면, '고민도 많이 해보고 시도도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을 고민과 선택 사이에서 구르고 부딪칠 줄 아는 사람으로 함께 성장해보자. 해보지 않으면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알 수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장의 불을 끌 수 있는 소화기 역할을 하는 열쇠가 내 손에 쥐어지지 않는 형태의 고민이라면, 지금 현재에 내가 가장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면서 그 열쇠가 쥐어질 때를 기다려 보아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지금의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다고 멋쩍은 웃음과 함께 늦은 밤 속삭였던 대화를 마무리했다.


세상은 하루하루 변하고 있고, 같은 시간에도 환경에 따라 상황은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애초에 사람이 같을 수 없기에 그 어디에도 모든 게 동일한 상황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해결 방법을 추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추천은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추천이며, 주관적이다. 내게는 맛집이었기에 추천을 했고, 내 추천을 받아 그 식당에 다녀온 상대방에게 얼마든지 공감을 기대해볼 수 있다. 공감을 바라는 내게 상대방이 가차 없이 '난 별로였다'라고 말을 했다고 해서 그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설령 수많은 네티즌이 맛집이라고 꼽고, 방송까지 나온 공인된 맛집이라 불릴지라도 네가 틀렸다고도 말할 수 없다. 추천이 강요가 되는 순간 꼰대가 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노력하면 충분히 스스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보다 10년도 더 어릴 때 나는 후배들에게 꼰대였던 적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영혼 없는 칭찬보다는 쓴소리를 전담하는 악역을 자처했다. 불과 5-6년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굳이 변명하자면 보고 배운 것들이 그랬다. 마치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 위치에서 우위를 선점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인 듯 당연하게 대물림 되었다. 쓴소리를 조언으로써 전달하지 않고 권위에 태워서 내뱉는 것이 그룹 내 예절이 유지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처럼 이어졌다. 사실 젊은 꼰대가 2010년대 이전에는 없었겠는가. 국가의 분위기와 흐름을 거슬러 유추해보면 더 심하면 심했지 없었을 존재들이 아니다.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요즘 것들'은 젊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인정하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이 <자존감소생술>에 올려지는 이유는 결국 꼰대가 되지 않게 도와주는 힘은 자존감의 건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게 꼰대 DNA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 떠올리는 <꼰대 방지 5 계명>으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나이 먹기는 쉬워도 어른이 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첫째,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둘째,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셋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넷째, 말하지 말고 들어라, 답하지 말고 물어라.

다섯째, 존경은 권리가 아니라 성취다.


(그림 출처: lifequotes)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