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도 몇 달 안 남은 지금, 문득 친구의 질문을 곱씹게 된다. 나는 왜 다른 사람의 서른이 궁금했을까? 돌이켜보면, 가장 큰 이유는 불안이었던 것 같다. 서른 살이 다가올 때 서른 살은 무언가 달라야만 할 것 같은 부담이 있었다. 이것을 서른 병이라고 한다면 그 증상은 서른이 29세와는 확연히 달라야만 할 것 같은 마음, 그리고 그로 인한 조급함으로 정의하겠다. 그저 하루가 더 지난 것일 뿐인데 스물아홉과 서른은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친구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안정을 찾고자 했던 것 같다.
서른 초반에 시작한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지금, 나의 서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전 직장에서 퇴사하고 만족스러운 곳으로 이직을 했다. 2년 계약직이다. 항변을 하자면, 대학상담센터는 정규직 자리가 거의 없다. 1년 반 뒤의 내가 또다시 자기소개서를 쓰며 새로운 이직처를 찾아야겠지만, 지금은 매우 만족한다.
친구들의 서른은, 그 색깔이 너무나도 다양했다. 일한 지 1년 차부터 10년 차까지 그 기간이 매우 다양했고, 각자의 성향도 정말 달랐다.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 도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취미가 많은 사람, 쉬는 게 중요한 사람 등등.. 인터뷰를 하며 내가 누군가와 도저히 같아질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는 걸 많이 느꼈다. 예를 들어, 생각이 너무 많은 나는 지윤이의 심플함을 부러워하지만 절대 지윤이만큼 심플해질 수 없다는 걸 안다. 우린 애초부터 성향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의 서른은 그 자체로 빛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꼭 어떤 것을 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찬란하다는 것. 그것이 모두에게 같았다. 나에게도, 독자들에게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나의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 인터뷰들은 나의 친한 친구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고, 그중에서도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당연히 모든 서른을 대표할 순 없다. 혹시나 나의 서른수집기를 보고 이런 이유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이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을 그저 서른 살 청년의 한 군상들로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