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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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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야 Nov 27. 2016

'사랑'의 시작

기억과 의식을 넘어서는 사랑

"I know only one duty, and that is to love."

나는 단 한 가지의 의무만 안다.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까뮈)


'왜 사랑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가진 지 정말 오래됐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랑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사랑이 닿는 곳은 어디까지일까, 어떻게 닿아야 할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을 행동해야 할까 등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우울증과 치매. 내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사랑을 바로 실천하기 어려운 순간들을 매일 마주하는 일일 거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 할머니의 치매와, 단짝 친구의 우울증을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강 건너 불구경밖에 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와 친구를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고, 어른들도 내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어른들이 왜 그렇게 묵묵부답이었는지 이제는 이해한다. 그런 절박한 순간에, 사랑이 얼마나 실천하기 힘든지, 그래서 가지는 죄책감이 얼마나 큰지 나도 (머리로는) 아니까.


지난주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글 두 개를 읽었다. 하나는 지인의 '우울증'에 관한 글이고, 다른 하나는 '치매'에 관한 글(영상)이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고, 정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 덕분에 나는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운 사랑의 존재와 사랑의 힘을 발견했다. 새로 '사랑'매거진을 만든 만큼, 첫 글이 내 글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왜 사랑해야 할까'라는 내 물음에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답을 준 이 두 글을 소개하기로 했다. 

김명선 '우울증 환자의 연인으로 지내는 방법'

첫 번째 글은, 일을 하다 만났지만, 잘 알지 못했던 한 분의 이야기다. 그녀가 앓고 있는 우울증에 대한 담담하고 솔직한 고백이자, 그런 그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다. 이 글은 한 때 사랑에 대한 헛된 기대를 품어, 마땅히 사랑받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던 내 빈한한 사랑을 돌아보게 했다. 무척 고맙다. 


Wendy Mitchell 'Understanding Dementia'
(클릭 후 Dementia Support 페이지의 첫 번째 포스트)
두 번째는 내가 참 좋아하는 페이스북 친구, 필로님이 소개하신 글이다. 치매를 앓는 한 영국 여성의 글을 담은 영상이다. 영어 영상인데, 어렵지 않은 영어라 아래에 번역해 보았다. 이 영상의 주인공은 '사랑은 어디까지 닿는가?'라는 나의 또 다른 오래된 질문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답변을 해주었다. 그녀의 답변을 건조하게 요약하자면, 사랑은 사람의 기억, 즉 의식 너머까지 닿는다. 빙봉이 소멸한 바로 그곳까지 말이다.

   제 이름은 웬디 미첼입니다. 저에게는 두 딸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스페인으로 휴가를 갔을 때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우리 셋이 한 사진에 있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늘 사진을 찍어주니까요. 그래서 이 사진은 행복한 휴가였던 만큼이나 저에게 아주 특별한 사진입니다. 
평범한 가족들과 달리, 저는 그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멋진 두 딸과, 무엇이 이 아이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지 기억할 수 없는 그 날 말입니다. 저는 알츠하이머 병 초기를 진단받았습니다. 제가 적은 글을 읽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집중하지 못하고, 아무 얘기나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NHS(National Health Service: 영국 의료보험 기구)에서 20년간 일했습니다. 저는 뛰어난 기억력으로 유명했습니다. 저는 잊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저의 기억력이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아주 심하게 말입니다. 최악의 에피소드는 직장에서였습니다. 하루는 제 사무실에서 나왔는데, 제가 있는 곳이 어딘지, 저를 둘러싼 목소리들이 누구의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 그간 제가 품고 있던 모든 불확실성이 끝나며 이상하게도 안도했습니다. 저는 치매에 걸리기 전, 매우 사적인 사람이었지만 의식(awareness)과 이해(understanding)가 없다는 것에 굉장히 충격받았습니다. 저는 지붕 위에 올라가서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Which Me Am I Today?(오늘의 나는 어느 나일까?)'에 글을 씁니다. 저의 기억력이 저를 더 실망시키면서, 블로그는 제 인생의 특별한 사건, 생각, 감정을 저장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저의 특별한 공간은 바로 남는 방입니다. 이 곳을 저는 '내 기억의 방'이라 부릅니다. 그 방에 들어설 때마다 저는 사진을 둘러보고 사진들은 저를 미소 짓게 합니다. 
   지난해 제 삶이 어떻게 변했는가 대신에, 저는 항상 긍정적인 사람으로 있으려 노력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변해야만 하는 부분을 받아들이려 노력한다면 당신은 긍정적이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치매에 걸린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라고 묻습니다. 음, 매일이 다릅니다. 현재 대부분의 날들은 특별히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좋지 않은 날에는, 뇌에 안개가 내려앉고 혼란이 지배합니다. 이런 순간을 헤쳐나가는 저만의 방법은 스스로에게 '이건 내가 아니라, 병이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 키와 비슷한 책장을 하나 상상해보세요. 이 책장은 대량 생산된 싼 조립식 책장입니다. 이 책장은 저의 사실적 기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일 윗칸에는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와 같은 기억을 담은 가장 최근의 책들이 있습니다. 제 어깨쯤에는 50대의 기억을 담은 책들이 있습니다. 무릎쯤에는 20대의 기억을 담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발쯤에는 저의 어린 시절을 담은 책들이 있습니다. 치매는 이런 제 책장을 좌우로 뒤흔듭니다. 책들은 가장 윗칸부터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저의 가장 최근의 기억은 책장의 좀 더 아래칸, 즉 제 삶의 더 이른 시기에서 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로 당신은 아마 치매에 걸린 사람은 모든 기억을 잃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제 뇌의 한 부분만 보여준 것입니다. 뇌에는 또 다른 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 다른 책장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이 책장은 견고합니다. 이 책장은 저의 '감정의 책장'입니다. 치매가 이 책장을 좌우로 흔들어 댈 때에도 이 책장은 더 강하고 잘 견딥니다. 그래서 책장의 내용은 더 오랫동안 안전합니다. 친구나 가족들이 저를 최근에 방문했다는 것은 잊더라도(왜냐하면 그 책은 사실의 책장에서 왔기 때문이죠) 제가 느꼈던 사랑, 행복, 그리고 편안함은 저에게 머뭅니다. 우리가 함께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그리고 당신이 잠깐 들렀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당신을 볼 때 안전하고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저를 만나러 오는 것을 멈추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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