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꿈에 그리던 맥도날드 면접 날이다.
교직원 첫 출근 정장 차림에 구두까지 신고는 한 손엔 나의 인생이 담긴 20대 인생 포트폴리오(Help My Dreams Come in Australia)를 들고 열심히 고속도로에 있는 매장으로 걸어갔다. 자기소개를 외우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느 차가 내 옆에 냅다 소리를 지른다.
- Get Out of Here!
(꺼져!)
깜짝 놀라 나 역시 욕이 절로 튀어나왔지만, 그들의 너무 찰지고 정확한 발음이 그저 신기해 기분이 나쁜 줄도 몰랐다. 아니 사실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괜히 시비가 붙을 것 같아 이 중요한 날에 그냥 못 듣고 싶었을 게다. 한 시간을 넘게 걸어 매장에 도착했다. 오늘 천천히 다시 보니 외국 드라마에서 본 풍경처럼 모든 게 그저 신기했다. 대형 매장과 그 앞에 깔린 넓은 주차장, 옆에는 어린이용 놀이터까지 있다.
마치 신입사원 공채인 것처럼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매장에 가득했다. 특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아주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와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시아인은 유일하게 나 혼자인듯 했다.
호주는 나이와 비자 상태에 따라 시급이 다르다. 어리고 정규직일수록 시급이 낮다. 다시 말해, 나처럼 나이가 많고 비정규직(casual)*인 경우 수당이 더 붙어 시급이 가장 높기에 영어로 고객과 소통해야 하는 바쁜 매장에서 내가 호주인 고등학생과 경쟁해야 한다면 나를 채용해야 할 이유는 점점 작아졌다.
Casual (캐주얼/임시직): Full/part time 정규직과 달리 근무시간이 불규칙적이고, 정해진 근로 시간이 없으며 필요할 때만 일을 함. 고용 안정성이나 유급 휴가 같은 혜택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지만 이 때문에 casual loading이라는 추가 수당이 붙어 시급이 제일 높음
매장 한켠의 테이블에서 2:1로 면접이 치러졌다. 면접관 두 명(지점장, 매니저)이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대상으로 꼼꼼하게 면접을 보는 듯했다.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면접이 계속된다면 경쟁률이 얼마나 될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정말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끌어올려 온 우주의 기운까지 모아보자고 다짐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CS 강사 자격증 과정까지 수료하고, 숱한 면접을 본 경험이 있는데, 이렇게 주눅이 들고 싶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어 그들 앞에 섰다. 승무원 면접을 준비했던 것처럼 90도로 허리를 숙여 최대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켈리(Kelly)라는 지점장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전에 봤던 우락부락한 매니저 마이크(Mike)는 짓궂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이크가 먼저 질문을 시작했다.
- You're from Korea, right? I saw on the news recently that 120 dogs were starved to death and eaten. Is it true that people in Korea eat dog meat? Do you like it too?
(한국에서 왔죠? 뉴스를 보니까 최근에 120마리 개를 굶겨 죽여서 먹었다고 하던데, 한국은 개고기를 먹는 나라 맞죠? 개고기를 좋아하시나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어봤지만, 같은 질문이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문화의 상대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긴장된 상태에서 짧은 영어 실력으로 그런 단어가 떠오를 리 없었다.
- No, I have never seen.... 그러니까, culture, (상대성이 영어로 뭐지), 흐음, I do NOT like a dog! unbelievable!
(아니오. 저는 그런 걸 본 적이 없... 그러니까, 문화, (정적), 흐음, 나도 개고기 안 좋아해요. 믿을 수 없는 일들이라고요!)
아쉽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의 최선이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군대 관련 질문이 이어졌다.
- Do you know how to shoot a gun? Could you kill someone if you had to?
(총 쏠 줄 알죠? 사람도 죽일 수 있어요?)
맞아! 계속 그런 말 하면 너도 쏴 버릴 수 있다고 농담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대한 가볍게 넘기려고 웃으며 대답했다.
- All Korean guys have to mandatory military service for 2 years. So I know how to shot, Be careful!
(모든 한국 남자는 2년간 군 복무를 해야 해요. 그래서 총 쏠 줄은 알아요. 또 잘 쏘기도 하고, 조심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고, 이어서 그는 호주에 온 이유와 내 이력서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계속되는 나의 더듬거리는 말과 한국식 영어 발음을 순수 호주인인 마이크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켈리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오히려 마이크에게 통역하며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어서 켈리가 가장 좋아하는 햄버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버거'가 떠올랐지만, 이곳 메뉴판에서는 보지 못한 것 같아 무난하게 ‘빅맥’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길래, 더 관심을 끌고자 한국의 ‘빅맥송’을 아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그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참깨 빵이 영어로 뭐지? 순 쇠고기 패티는? 순간, 아무리 생각해도 영어로 바꿔서 부를 자신이 없어 그냥 한국어로 부르되, 영어 발음과 비슷한 단어들에만 최대한 힘을 주어 길게 늘여가며 불렀다.
- 참깨 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쒀-스 양상추, 치이-즈, 픽-끌, 양파까지~ 빰빰빠빠밤!
면접관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고, 한 번 더 불러달라고 했다.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에라 모르겠다’ 하고 일어나서 없던 춤까지 만들어 추며 크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주변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고, 옆 테이블에서 햄버거를 먹던 한국인 커플은 신기한 듯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한참 대화를 나눈 후, 내가 가져온 포트폴리오를 신기한 듯 살펴보던 마이크는 맥도날드 경력 증명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 What kind of tasks can you do in the store?
(매장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어요?)
사실, 십 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햄버거를 만들 줄 안다고 답했다.
- You know how to make a Big Mac, right?
(빅맥도 만들 줄 알겠네요?)
당연하지! 그리고 '상하이 버거'도 만들 줄 안다고 말했더니, 켈리가 옆에서 발음을 고쳐주며 ‘쉥하이 버거’라며 웃는다. 나는 이어 '맥치킨 버거'라고 했고, 그도 ‘맥칙큰 버거’라고 따라 말하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냐고 물었을 때, 유니클로에서 일하며 익힌 필살기를 꺼냈다. 유니클로에서는 항상 작은 수첩과 펜을 들고 다닌다. 그걸 상기하며 미리 왼편 가슴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작은 수첩과 펜을 꺼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I always bring these things. I am trying to write down everything what you said, so I am not ask twice you mentioned it. And I well know the new burger or new menu launch in Australia first and then come to Korea. I am very excited I can have a chance to meet new menu first in here. Also, I heard that there is no one Asian crew here, I would like to become a first Korean crew member with you.
(저는 항상 이걸 들고 다닙니다. 매니저님이 말씀하시는 건 다 받아 적고, 바로바로 숙지해서 두 번 물을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호주에선 새로운 버거가 먼저 출시된 후, 한국에 나중에 들어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신메뉴를 먼저 접할 수 있다는 게 설레요. 그리고, 이곳에 한국인이 알바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저는 이곳의 최초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다음 주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라는 이메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