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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오빠 Nov 25. 2024

야매 웃음치료사

스탠소프에 도착하자마자 근처 농장부터 무작정 찾아가 두드렸다. 대게 일자리와 함께 숙소도 제공해 준다고 했지만, 막상 가보니 하루 종일 사과를 따서 번 돈은 모두 고스란히 숙박비로 다시 농장주에게 내어주어야 할 판이었다. 좀 더 며칠 시간을 갖고 천천히 찾아보기로 하고는 마을 입구에 봐 둔 백패커로 되돌아 갔다.


리셉션 직원은 대뜸 시내에서는 없었던 1주일치 디파짓(보증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수중에 가진 전재산이 얼마 없고, 농장일을 구하러 오늘 온 상황이라 봐 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2주일 치나 받지 않는 것에 감사히 여기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디파짓과 숙박비를 내고 나니 수중에 500달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렇게 불안함 속에 우리 세명은 침구류도 없는 2층 침대가 2개가 들어있는 한방에서 1주일을 머물기로 했다.  


한여름이지만, 이불이 없어 가진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잤음에도 시골의 새벽은 추웠다.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민석이는 우리가 추위에 떠는 것과 상관없이 창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그는 호주에서 1년 넘게 살았고, 자동차까지 있다 보니 침낭부터 각종 한식 조미료까지 없는 것이 없었기에 우리의 고충을 잘 모르는 듯했다.


민지와 나는 너무 추워서 못살겠으니, 아침에 창문을 여는 것 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군인의 습관이라며 환기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먼지 때문에 감기가 걸리니 꼭 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장을 보러 슈퍼에 갈 건데 같이 갈 거냐고 물었다. 단, 지금부터 본인의 차를 얻어 탈 거면 5달러씩 교통비를 내라고 했다.


- 양아치, 5달러면 우리나라 택시보다도 비싼데...*


2013년 한국의 지하철 기본요금: 1,050원 / 택시 기본요금: 3,000원 / 최저 시급: 4,860원



하지만 아쉬운 건 나였기에 입 밖으로 욕을 꺼내지 못하고 삼켜야 했다. 농장 일자리를 구하는 대로 교통비는 잘 챙겨 줄 테니 지금은 좀 무료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으나, 이건 호주의 문화이며 나도 1년 정도 살다 보면 워낙 당연하게 인식할 거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 그러면 뭐 앞으로 살아야 할 지역인데 지리도 익힐 겸, 운동 겸 걷고 오지 뭐


오기로 1시간이 넘는 거리를 혼자 걸어가 장을 봐왔다. 생수 하나, 주스 하나, 그리고 제일 저렴한 딱딱한 머핀과 딸기 잼을 사왔다. 그 뻑뻑한 빵을 구울 도구도 없었고, 먹는 방법도 사실 잘 몰라 그냥 잼만 듬뿍 발라 먹었다. 그렇게 세끼를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계속 민석이와 같이 지내야 하는 게 마음에 영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자리는 최대한 빨리 구해야 했기에 틈만 나면 셋이 모여 여기저기 농장에 찾아가 보고 전화를 돌렸다. 우리 셋의 영어 실력은 고만고만했다. 그래서 스피커 폰으로 농장에 연결이 되면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은 해석하며 도와주고, 대화가 막히면 서로 먼저 나서서 말을 이어가며 일을 구해보려 애를 썼다.


이렇게 어설픈 영어로 세명이나 일자리를 같이 달라고 하니 모두 거절했다. 그러던 중, 마을 중심가에 농장 취업을 전문으로 알선하는 직업소개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곳에 가보니 호주인 직업 상담사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간단히 이력서를 작성하라며 펜과 종이를 건넨 후, 곧바로 영어 인터뷰를 시작했다. 내 차례가 되어 그녀 앞에 앉자, 이력서를 훑어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내 영어 이름 '클로버(Clover)'가 꽤 웃긴 모양이다. 낯선 땅에서 행운을 빌어 달라며 지은 이름이었는데, 그녀에게는 영국의 다섯 살 여자아이가 떠오른다며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농장 일을 해본 적 있느냐고 묻는다.


사실 해본 적은 없었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호감을 얻어야 했다. 그래서 어릴 적 여름방학이면 찾아갔던 시골 할머니 댁을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 When I was young, elementary school sudent and middle school student, I went to my grandmother house in country. She has a very big farm. So I helped her picking apples, various vegetables. 

  (매년 방학엔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갔었어. 엄청 큰 과수원을 하셔서 사과도 따고 다른 여러 가지 채소들을 수확해 봤어요.)


그러자 그녀가 물었다. 


- It’s not just for a few days, you know. You’ll be doing this every day, and it’s pretty tough work. Are you sure you’re up for it?

  (며칠이 아니라 매일 해야 하는 일이면 엄청 힘들 것 같은데, 괜찮겠어?)


문득 웃음치료사 자격증이 생각났다.


- I have a laughter therapy certificate! I faced with hard time. I can laugh. I know how to overcome hard time! 

  (나 웃음 치료사 자격증 있어요! 힘들 때 웃을 수 있어요.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잘 알고 있어요!)


이러한 긍정적인 모습에 호감을 샀나 보다. 바로 다음 주부터 햇볕이 뜨거우니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딸기 농장으로 첫 출근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말한 농장까지는 너무 멀어 차가 없으면 갈 수가 없었다. 상황을 설명하니 차가 있는 친구가 있냐고 물었고, 그렇게 민석이와 같이 출근을 하기로 했다. 함께 온 여자애도 있다고 같이 일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농장일은 힘들다며 남자들만 출근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민지가 없어졌다. 새벽에 있는 고속버스를 타고 혼자 시티로 돌아가버린 모양이다. 자기는 여기에서 일자리 구하기는 틀린 것 같다며, 덮던 담요와 편지를 내게 남기고 사라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운이 참 좋았다. 호주에 오자마자 일주일 만에 지역을 옮기고, 또 일주일 만에 농장 취업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호주에 온 후 처음으로 마음 편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편하게 둘 리가 없지. 스탠소프는 밤이 되면 도롯가에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그야말로 깡시골이었다. 그런 시골에 나를 혼자 두고는 친구들과 시내에서 파티가 있다며 며칠 간 혼자 민석이는 휴가를 가버렸다. 


아무리 인생 혼자라도, 이런 시골의 텅 빈 백패커에 혼자 있는 건 정말 무서웠다. 마치 외국 공포영화처럼, 밤에 톱을 든 살인자나 귀신이 갑자기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만큼 으스스했고, 불이 모두 꺼진 밤은 폐교처럼 음산했다. 어둠을 몰아내려고 모든 불을 켜고, 넓은 거실로 나와 TV도 켰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에도 어김없이 '나 홀로 집에' 특선 영화가 나왔다. 그 외 모든 방송은 빠른 영어로 흘러나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는 데다 내가 볼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홈쇼핑 채널의 쇼호스트가 친근하게 설명해주는 모습에 현지인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채널을 고정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홈쇼핑 로비에 있던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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