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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나부랭이

by 공대오빠

팀은 회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빠르게 규모를 키워 갔다. 기존에 팀원이라고는 나 혼자 있었던 기획팀이 어느새 4명으로 늘어났고, 함께할 개발팀도 10명 이상 채워졌다. 팀장은 서울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새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꽤나 컸을 게다. 어쩌면 그것들을 견디기 위해 그도 더욱 술과 담배에 찌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몇 달 후, 개발팀으로 신입사원 공채 후배들이 3명이나 들어왔다. <90년생이 온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세상처럼, 이 딱딱한 조직에서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공채란 그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처럼 팀장은 유독 그들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대고 관심을 가졌다.


예를 들어, 상급자가 부르거나 회의실을 이동할 때 실내화를 신는다거나 각자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유튜브 영상을 보는 걸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 때면 군대처럼 그들 앞에 나를 불러 세워 놓고는 선배가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직장 예절을 내가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혼을 내곤 했다.


후배들은 IT팀이라 조금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기대했겠지만, 전반적으로 문화 자체가 많이 경직되어 있었다. 상급자가 퇴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남아서 눈치를 봐야 하거나,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체질임에도 잦은 술자리 회식에 강제로 먹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또한 점심/저녁 도시락은 늘 해장을 위한 국물 중심의 식단으로 제시간에 맞추어 식지 않게 배달해 놓아야 했다. 다 먹고 난 음식물 처리까지…


출처: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Blind)


그러던 어느 날, 연차를 쓰는 것 때문에 후배 한 녀석이 팀장에게 불려 갔다. 연차 신청 사유란을 빈칸으로 상신한 것이 그 이유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직 문화에 불만이 많았을 텐데, 이런 이유로 혼이 난다는 것은 그들의 세계에서는 이상한 나라에 사는 것 같았을 게다. 그는 당당하게 신입사원 입문교육에서 연차 사유는 비워두라고 인사팀에서 배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말대답하는 싸가지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날 오후, 팀장에게 불려 가 또 혼이 났다.


하지만 그럴수록 MZ 끝물에 서 있는 나도 겉으로는 죄송하다고 했지만, 마음은 후배들 편이었다. 고맙게도 그런 마음을 잘 알았는지 후배들은 곧 잘 나를 따랐다. 공짜로 사준대도 그렇게 재미없고 가기 싫었던 회식이, 우리끼리 몰래 모여 한잔 하는 건 너무 즐거웠다. 누구보다 서로의 상황을 가장 잘 알았기에, 전우애처럼 보이지 않는 끈끈한 무언가로 강하게 우리들을 연결한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나를 ‘대장님’이라고 불렀고, 주말에 대외 활동을 같이할 만큼 사적으로도 친해졌다.


팀장은 공채인 내게도 매우 엄격하고 기대치가 높았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거나 보고 자료를 만들 때면, 늘 나이와 직급을 언급하며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 나이면 과장은 달아야 하는데 아직도 대리급 수준으로 일을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꼭 연필을 들고는 내가 쓴 문장 하나하나를 찍찍 그어대며 수정했다. 명확하게 어떤 문장으로 수정하라거나 어떤 내용을 담으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방향을 주면 좋겠지만, 그냥 긋거나 도형만 그리며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말들만 쏟아 냈다.


사람들은 그가 보고서를 매우 잘 쓴다고 했다. 그리고 그도 그걸 잘 아는 듯했다.


팀장은 내게 항상 기획자가 든 펜은 곧 칼과 같다고 했다. 내가 작성한 사업계획서에 따라 사람을 더 채용할 수도 있고, 오히려 하나의 팀을 없애 버릴 수도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기에 자부심을 느끼되 더 책임감을 갖고 생각하라고 했다.


배우는 과정이 너무 거지 같고 자존감을 종종 땅에 파묻게 했어도, 그렇게 며칠을 시달리며 고치고 또 고쳐 탄생한 보고서를 보면 뿌듯하고 멋지긴 했다. 대신 그와 함께한 시간은 늘 야근이 디폴트였다. 특히 내년도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거나 대표님께 직접 보고할 자료를 만들 때면, 새벽까지 고치고 또 고치고 택시를 타야 집에 갈 수 있는 지옥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사람마다 느끼는 역치는 다 다르겠지만,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위도 내게는 꽤 강렬했다.


그 모든 걸 옆에서 본 동료들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퇴사하라고 했다. 내 성격상 나가서 뭐라도 할 사람인데 그렇게 지내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중도금 대출로 이미 진행 중인 수억 원의 대출과 남아있는 신용대출을 품은 상황에서 그만두는 것은 쉽지 않더라. 무엇보다 아직도 그 나이에 대리면 언제 과장 달고 승진할 거냐며 지금 나의 업무력은 너무 부족한 상태라고 깎아내려대는 가스라이팅에 기가 너무 많이 죽어 버렸다. 휴, 어느새 나의 머리통은 반백(半白)이 되도록 더 하얗게 희어져 가고 있었다.


그해 겨울은 왜 그렇게 추운지, 8층 사무실 통유리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은 예쁘지만 슬퍼 보였다. 눈은 한쪽 방향으로 미치게 내달리며 바닥에 떨어질 듯하다가도 부는 바람에 계속 엉켜 맴돌면서 허공에 떠돈다. 마치 방향을 못 찾고 여기저기 치이는 내 모습 같이 느껴졌다.


정신없이 1년을 보내니, 우리 팀에서 기획하고 개발팀에서 노력한 결과물이 드디어 출시됐다. 전국에 있는 각 영업 단에서 잘 판매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했고, 우리는 방문 설명회를 가지기로 했다. 그렇게 3년 만에 다시 광주에 가게 되었다. 당일치기 출장이라 시간이 짧은 것이 아쉬웠지만, 고향의 가족을 보러 가는 것처럼 너무 좋았다.


도착하여 제품 교육 겸 발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팀장이 사람들 앞에서 말을 끊으며 혼을 냈다.


- 야! 왜 이렇게 발표를 편하게 해?


앉아서 한 것도 아니고, 화면 앞에 서서 마이크를 들고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신입사원으로 마주했던 그들 앞에서 지난 3년 동안 잘 성장해서 이렇게 대리로 승진도 했고요, 다시 찾아왔어요! 라며 자랑스러운 막냇동생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본 선배들 앞에서 쭈그리 같은 모습으로 혼이 나야 하는 게 속상했다.


- 수주 발표하는 것처럼 정식으로 PT를 해야지!


어떤 계약을 따기 위한 PT는 영업팀에서 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전문 PT양성 과정이 별도로 있을 만큼 전문 직무인데, 그걸 왜 갑자기 사람들 앞에서 내게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이건 내부 직원에게 이 제품을 잘 팔 수 있도록 설명하고 안내를 해드리는 자리인데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아니 실제로 수주 PT를 본 적도 없으므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냥 물음표만 머금은 채 꾸역꾸역 발표를 마쳤다.


발표가 끝나고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나를 아껴주셨던 누나가 한가득 선물과 먼 길 올라가는 데 필요하지 않겠냐며 생수도 챙겨 주셨다. 그리고 저녁은 먹고 가라며 근처 고깃집으로 초대도 해주셨다.


반가움 반, 아쉬운 반으로 술도 한잔했다. 센터장님이 <트렌드 코리아> 책에서 내 이름을 보셨다면서 이렇게 시간이 흘러 잘 성장했고 참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견하다며 팀장에게 내 칭찬의 운을 띄웠다. 그러자 그는 톡 쏘아붙이면서 그래도 나이만 많지, 아직 업무는 대리 수준이라고 깎아내렸다.


대리급 수준의 업무력은 어떤 걸까? 그러면서 전무님 이름으로 나가는 잡지에 실릴 특집 기획 기사 원고는 왜 나보고 작성하라고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내 미래도 모르겠는데, 대리 나부랭이가 어떻게 AICC의 미래를 임원 수준으로 바라보고 논하겠는가?


제주도-광주-대전을 거쳐 겨우겨우 서울로 입성했는데, 삶은 너무 지치고 지읒 같았다.


내가 많이 힘들어 보였는지, 과장님은 봄에 열릴 ‘EFT* 강사 양성과정’ 2박 3일 교육을 좀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내가 배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프로그램 자체가 내가 좋아할 분야 같다며 바람도 쐴 겸 가보라고 했다. 바빠서 연차도 다 못 쓰고 있는 상황에 직무와 직접적인 연관성도 낮아 눈치가 보였지만, 과장님은 인사 평가를 위해 필수로 채워야 하는 교육 이수 시간을 핑계로 밀어붙여 주셨다.


EFT: Empowering Facilitator를 양성하는 그룹사 교육 과정. 변화·혁신의 가속화를 위한 촉매제로써 구성원의 의지를 이끌어 내어 토론을 진행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교육. 수료하면 이후 사내 워크숍을 이끌어 가는 운영자로 활동할 수 있음


연수원에 간다는 건,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설렘을 주었다. 입사할 때의 마음가짐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그동안 아끼느라 포장을 뜯지도 않은 명품 화장품 세트를 들고 갔다. 34살에 십 년째 신입사원으로 다시 잘 살아 보겠다며 잡지사에 사연을 보낸 엽서가 당첨되어 받았던 패키지였다.


백화점에도 입점했을 만큼 유명한 브랜드라지만, 막상 사용해 보니 성분도 향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해도 나랑 안맞으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60일도 채 남지 않은 유통기한을 확인하고는 연수원 쓰레기통에 모두 버리고 나왔다. 나도 여기서 더 버텨낼 수 있는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연수원 마당에 핀 벚꽃은 참 예뻤다. 그 꽃잎을 만져보며, 내년 봄에 우리는 꼭 다른 곳에서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밤늦게 퇴근을 하더라도, 다시 옷을 갈아입고는 근처 공원에 가서 무작정 뛰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거리를 늘려가며 10km는 거뜬히 뛸 수 있게 체력을 기르고 무기력함을 날려버렸다.


그렇게 오기로 아무리 피곤해도 운동이 끝나고는 새벽까지 경력기술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며 만들어 고치고 또 고쳤다.


그러자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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