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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대전 찍고 서울

by 공대오빠

입문 교육이 끝나고, 자대 배치를 받듯 우리 회사의 신입사원 동기 12명은 전국 각 지역사업단으로 흩어져야 했다. 회사의 주역이 될 인재들이기에 현장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대표이사의 지시가 그 배경인 게다.


그렇게 발령을 받은 3월의 첫날, 광주행 고속버스 티켓을 끊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 새벽, 첫 조카가 태어났다는 소식으로 보내온 쭈글쭈글한 외계인 같은 아기 사진을 보며 버스에 올랐다. 그 작은 생명체가 세상에 울음을 터뜨리며 인생을 시작한 것처럼, 나도 신입사원으로서 첫 출근을 위해 떠나는 날이었다. 호주에 이어 제주도로 떠났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캐리어 하나에 모든 짐을 싣고 출발했다.


도착한 사무실은 광역시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노후한 건물이었고, 최고령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게 나는 가장 막내였다. 강한 사투리를 쓰는 선배들 사이에서 밋밋한 내 말투는 마치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다행히 모두가 서울에서 온 막내를 대하듯 따뜻하게 챙겨주었다. 반찬을 만들어 나눠주거나 사택에 집들이를 핑계로 방문하여 생필품을 챙겨주는 등 정(情)이 넘쳤다. 부장님과 대리님은 타지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저녁이면 칼퇴를 독려하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 덕분에 대학교 야간 수업으로 미술 심리 치료를 배우며 나에 대해 공부하고, 주말이면 관심 있던 바리스타 연습을 하며 커피 자격증도 땄다.


몇 달이 흐르고, 대전 본사 내 화장품 팀에 있던 동기가 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화장품 관련 일을 업으로 삼을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아 바로 사내 공모에 지원했고, 면접을 통해 부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떠나기 전날, 친한 선배들은 사택에 찾아와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었고 마지막 인사라며 밥도 사주셨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 땀범벅으로 광주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대표이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본부장님과 집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대표이사님은 내 이력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 앞에서 본부장님께 버럭 화를 내셨다. 아모레퍼시픽 경력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화장품 관련해서는 그 회사 공모전 경험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위축되지 않고 자신 있게 웃으며 그의 팔을 쿡쿡 찌르며 말씀드렸다.


- 제가 잘해 볼게요 :-)


당시 SNS 광고 시장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에 따라 인플루언서 등급을 나누고, 뷰티 유튜버들과 협업을 하려던 초창기였다. 그들의 생태계에 빠져 직접 해봐야 그들을 잘 이해하고 운영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TV홈쇼핑에서 뷰티 인플루언서들을 선발해 화장품 방송을 같이하는 콘셉트의 방송을 기획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짧았지만 홈쇼핑 MD 경력으로 누구보다 그 유통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아나운서를 준비했던 경험과 현재 화장품 마케터로서 디테일하게 제품 소구점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여 10주간 방송 패널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냈다.


목요일 저녁, 퇴근 후 대전에서 SRT를 타고 판교로 올라와 심야 홈쇼핑 방송에 출연했다. 생방송이 끝나면 새벽 1-2시. 교통이 없어 근처 찜질방에서 새우잠을 자고는 다시 첫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했다. 그렇게 인플루언서들과의 네트워크를 쌓아가며 어떻게 해야 그들을 이해하고 잘 협업하며 홍보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업무도 즐거웠다. 직접 SNS 콘텐츠를 기획하고, 내가 상상한 대로 온·오프라인 이벤트를 운영하는 일은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창기부터 마케팅을 총괄하던 과장님과 의견 충돌이 잦아졌다. 내 기획안을 반대하거나, 사진 촬영을 위해 비용 절감 차 카페에 가는 것도 문제 삼았다. 성향 차이도 컸다. 그는 술과 담배를 즐겼지만 나는 저녁에 술을 마시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러 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다.


우수직원 표창을 받게 된 날, 과장님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보통은 파트장이나 팀장급이 추천을 해서 선발을 하는데, 나는 본부장님이 직접 뽑으셔서 1박 2일 우수사원들과 포상 휴가를 가게 된 것이다. 과장님은 대놓고 본인이 추천을 안 했는데 네가 왜 거길 가냐면서 수상자들끼리 액티비티를 하며 즐기는 시간에도 전화를 걸어 업무 지시를 했다. 이렇게 불만은 쌓이고 쌓여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기로 했다.


억압에 대한 반항의 표현을 담아 ‘뽕이다 이년아’라는 필명으로 SNS에 독서 후기를 핑계로 일기처럼 느끼고 있는 감정을 털어놓았다. 당시 교보 문고 VORA* 서포터즈 활동을 겸하여 좋아하는 작가도 만나고, 다양한 책을 무료로 지원받을 수 있었다. 자연스레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다양한 글을 쓰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VORA: 교보문고가 운영한 책과 강연을 기반으로 한 문화공간 커뮤니티


솔직하게 SNS에 책과 함께 회사 이야기를 게시한 글은 내부적으로 보이지 않는 논란이 되었고, 그럴수록 과장님과 팀장님은 더욱 나를 괴롭혔다. 결국 그들은 S그룹 출신의 마케팅 경력자를 영입하면서 나를 마케팅 업무에서 완전히 배제시켜 버렸다. 그리고는 대표 전화만 받는 단순 업무만 하라며, 친절하게 내 자리에 있는 전화기로 모든 내선번호를 돌려놓았다.


퇴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지읒같은 십 년째 신입사원을 또 어찌 할 수 있을까? 이제 겨우 버텨 대리로 승진했는데, 다시 또 어딘가에서 막내 짓을 반복 할 수는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쭉 2년 동안 곁에서 지켜보던 옆 팀의 선배가 조용히 제안을 해왔다.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것이 어떻겠냐고...가고 싶은 부서가 있다면 도와주겠다며 응원을 해주셨다.


그 무렵 같은 사택에 살던 인사팀장님도 새로운 기회를 제안했다. 회사가 AI를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며 AICC* 신사업 조직을 서울 사무소에 만들 계획이니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AICC: AI Contact Center(인공지능 컨택센터)의 약자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고객센터의 자동화


너무 좋은 기회라는 것은 알았지만, 컴퓨터 포맷도 할 줄 모르는 화장품에 미친 컴맹이 무슨 AI를 할 수 있겠냐며 처음에는 싫다고 했다. 조금 더 여기에서 경력을 쌓다가 이동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부장님은 이 좋은 기회를 왜 놓치냐며 얼굴을 볼 때마다 말씀하셨고, <트렌드 코리아> 집필진 활동을 수년째 해 오면서 확실히 AI가 트렌드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점점 고민이 커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넣은 청약이 당첨되면서 중도금 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가게 될 일이 있었다. 연봉 4,000만 원 미만은 ’저소득 근로자‘라며 보증보험료 할인을 해준다고 했다. 할인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나 저 글자들을 자필로 계약서 직접 적어야 한다고 했다.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충격이었다.

그날 집에 오면서 결심했다. 전망도 있고, 연봉을 많이 높일 수 있는 IT분야로 가야겠다고... 화장품 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싶었지만, 유명한 전문 화장품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지 않는 이상 만족할 만한 연봉은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단 화장품 마케팅은 실컷 해보았고 여기까지였던 것 같았다.


그 보다는 서른 넷에 신입사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남들보다 뒤쳐진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소득을 어서 더 높여야 뭐 결혼을 하든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은 불안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또다시 부서 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또 여름은 왔고, 이번 폭염엔 대전에서 서울로 짐을 싸서 올라왔다. 아직 자리도 제대로 세팅되지 않은 영업팀 옆에 앉아 새로운 팀장님과 단둘이 그렇게 AICC 기획팀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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