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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원 Aug 21. 2019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현재를 살고 있나?

영화에서 건져올린 질문들 01

나는 어디에 머물러 있나? 현재를 살고 있나?

미드나잇 인 파리

감독 : 우디 앨런

출연 : 오웬 윌슨(길), 마리옹 꼬띠아르(아드리아나), 레이첼 맥아담스(이네즈)

개봉 : 2012. 07. 05



일 얘긴 하고 싶지 않아._길


전체 말고 주인공 얘기만._이네스


싫어 안 할 거야._길


...... 남잔 노스탤지어 샵에서 일해._이네스


노스탤지어 샵이 뭐야?_캐롤


설마... 수집용 인형이나 고물 라디오 파는 데?_폴


맞아._이네스


그런 걸 누가 사?_폴


과거 속에 사는 사람들? 이전 시대에 살았으면 더 행복했을 거라 믿는 사람들._이네스


어느 시대에 살고 싶은데요, 미니버 치비(Miniver Cheevy) 선생?_폴


1920년대 빗속의 파리._이네스


나쁘지 않았을 거야_폴


산성비도 아니었고_이네스


알겠다. 지구온난화도 없고, TV, 자폭테러, 핵무기, 마약조직도 없던 때_폴


공포물에 꼭 나오는 소재들_캐롤


과거에 대한 향수는 '부정'이야. 고통스러운 현재의 부정._폴


길은 완전 몽상가라서 현재를 영영 부정하고 살 수 있다면 더 행복해할걸_이네스


그 오류의 이름이 바로 '황금시대 사고'야._폴


정답!_이네스


그건 잘못된 개념이야. 다른 시대가 현재보다 나을 거라는 착각은 현실에 적응 못하고 로맨틱한 상상이나 하는 사람들의 허점이지._폴


초록색으로 표시한 이네스와 폴이 말한 내용을 보면, 길에 대해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길은 다른 시대(길이 생각하는 황금시대인 1920년대, 특히 파리)가 현재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길이 틀렸다고 단정할수 있을까? 길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받아들일수는 없는 것일까? 완전히 틀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실은 아닌 말, 가짜 휘발유 같다. 가짜 휘발유 성분 중 가장 많이 들어있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진짜 휘발유이다. 일부 사실에 기반하는 농담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없는 말도 아닌데, 왜 그래? 웃자고 하는 말이야." 그것은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말속에 담긴 의도와 방향이 악의적이다.



이 대화가 진행되는 내내 내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위의 영화 속 장면 이미지를 보면 길과 나머지 세 사람이 서로 다른 편인 듯 구분되어있다. 길을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 이분법적으로 갈라서 '너는 틀렸다'라고 몸으로 그리고 말로 말하고 있다. 길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지지와 공감은커녕 공격으로 들리는 말 폭탄 세례를 그는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길이 외롭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네스는 길의 연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폴의 태도이다. 폴은 자신이 하는 말의 방향을 인식하는 걸까 의문이 든다. 길을 위한 것인지 폴 자신을 위한 것인지 그가 모르고 있다면 멍청한 것이고, 알고도 하고 있다면 그는 나쁘다. 내 눈에는 길을 깎아내리고 스스로는 드러내어 과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 마음에 드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이 하는 행동과 흡사하게 보인다. 그런 폴을 박식하고 똑똑하다며 감탄하는 이네스를 보면 마음이 더 답답해진다. 길은 이네스에게 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사이비 지식인 pseudo-intellectual 같아."


문득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 곤들매기 편, 유우타의 대사가 떠오른다. "자신이 몸으로 직접 체험해서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배운 것, 자신이 진짜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거잖아.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체하고, 남이 만든 걸 옮기기만 하는 놈일수록 잘난 척해. 천박한 인간이 하는 멍청한 말 듣는 데 질렸어." 내가 그 천박한 인간은 아닌지 늘 경계하고 조심하면서 품고 있는 대사이다. 폴은 지식이 많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다.


폴이 하는 말과 그의 행동이 내 마음을 드륵드륵 긁어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부정하고 싶은 나의 일면을 화면 속에서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꼭 필요하지 않은 말, 나를 드러내고 싶어서 하는 지식 자랑, 누군가를 겨냥한 무기 같은 단어. 내 마음이 건강하지 않을 때 발견되는 모습이다. 폴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까?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하지 않는 지식은 위험하다.




뭐 하는 거예요?_아드리아나


나도 모르겠어요.

근데 확실한 건 입 맞추는 동안엔 내가... 불멸의 존재 같았어요._길

(진정한 사랑은 죽음마저 잊게 만든다네._헤밍웨이)


근데 너무 슬퍼 보여요._아드리아나


인생은 너무 알 수가 없어서요._길


우리가 사는 현재가 그래요.

모든 게 너무 빨리 움직이고

삶은... 소란스럽고 복잡하죠._아드리아나


알 수 없는 현재와 미래가 불안하다는 길을 보며, 인생에도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시기가 떠오른다. 무엇하나 확실하지 않고 그래서 겁이 나고 두려움이 몰려오던 그때. 하고 싶은 일과 안정적인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던 내 마음속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지나가버린 현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시간의 유한성, 이대로 지나간다면 나의 푸르른 날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공포였다. 인생은 너무 알 수가 없어서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 길이 애잔하다.



1920년대의 젤다와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 어니스트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1890년대 벨에포크 시대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폴 고갱과 에드가 드가.


지금 우리에게는 거장이지만 그들조차도 때로는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며 현재를 산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폴이 길한테 말한 것처럼 그들이 모두 미니버 치비는 아니다.


"이 세대는 공허하고 상상력이 없다."_폴 고갱


폴 고갱이 그리워하는 과거와 그 시대에서 느끼고 싶고 얻고 싶은 정서와 가치를 살펴보면, 고갱은 존재 의미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명 중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제목을 보고 추측한 것이다. 또 그는 더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을 추구했나 보다. 벨에포크 시기의 그들도 열정 가득하고 실수도 하는 청년이었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그리워하는 그들의 모습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지금 늘 방황하고 갈등하고 여러 선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의 이 모습도 미래의 어느 날엔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나도 당신처럼 현재를 벗어나

황금시대로 가고 싶어 했죠._길 펜더


설마 20년대를

황금시대로 생각하진 않겠죠?_아드리아나


나한텐 그래요._길 펜더


난 20년대에 살지만 황금시대는 벨에포크예요._아드리아나

** 벨 에포크란 주로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까지 파리가 번성한 화려한 시대, 그리고 그 문화를 회고하여 사용되는 단어이다.


저들을 보세요.

저들에게 황금시대는 르네상스라잖아요.

(벨에포크 시대의) 그들은(로트렉, 고갱과 드가)

그때(르네상스)로 가서 함께 그리고 싶어 할걸요.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와.

또 그들은 칭기즈칸 시대를 동경할 거고요._길 펜더


이제야 알겠어요.

사소한 거지만.

내 꿈속의 불안이 뭐였는지.

악몽 속에서요.

페니실린이 떨어진 거예요.

또 치과에 갔는데 마취제도 없었고요.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_길 펜더


환상적인 과거 여행을 하고 있는 길. 그가 그의 황금시대인 1920년대에서 만난 아드리아나와 같이 또 한 번 과거로 이동한다. 아드리아나가 동경했던 그녀의 황금시대 벨에포크로 가서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아! 하는 깨달음이 온다. 그녀에게 하는 말은 그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그녀를 통해 자신을 보았다. 내가 동경하는 황금시대에 머무르면 그것은 현재가 된다. 현재의 나는 또 다른 황금시대를 그리워하고 그것은 언제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현재를 살아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3차원에 사는 존재이기에 현재를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현재를 사는 것이 쉽지 않다.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그러다가 또 지금 이 순간을 과거를 생각하면서 흘려보내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과거를 살며 현재를 지나쳐 버리고, 다시 과거가 된 어제의 현재를 오늘 또 그리워하고.


나는 어디에 머물러 있나? 현재를 살고 있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어쩌면 비 오는 날 파리를 걷으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 현재를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을 온전히 사는 것. 영화 속에 흐르는 콜 포터의 Let's Do It(Let's Fall In Love)은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는 손편지 같다. "진정한 사랑은 죽음마저 잊게 만든다네. 두려운 건 사랑하지 않거나 제대로 사랑하지 않아서지._헤밍웨이" 그러니 현재를 온전히 누리려면 제대로 사랑을 하라고.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건져 올린 질문들


* 과거를 황금시대라고 생각한다면 이유가 무엇인가?

* 나에게 황금시대는 언제인가? 

* 지금을 황금시대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지점이 있다면 언제인가? 이유는?

* 과거로 돌아가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

* 그 사람과 무엇을 하고 싶은가?

* 나는 무엇이 두려운가?

* 그 두려움의 뿌리는 무엇인가?

* 나는 무엇을 외면(부정) 하고 있나?

* 두려움을 잊게 만들 정도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 내가 현재를 살 수 있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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